먼저 아이폰을 블루라군에 넣고 끓여줍니다
12월 아이슬란드는 쓸쓸한 동화 속 같다. 집집마다 창밖을 향해 크리스마스 장식을 거는, 눈 내리는 것보다 눈 쌓인 거리를 더 많이 보게 되는, 세찬 바람이 불고 하루 4시간만 해가 뜨는 진짜 겨울의 나라.
그러나 길을 걷다 상대와 눈이 마주칠 때, 혹은 기념품 상점을 구경하고 빈손으로 나설 때, "해피 뉴이얼!" 말하면 상대는 똑같이 인사하며 웃는다. 오늘이 나의 생일인 것처럼 그 말 하나면 누구나 내게 친절하다. 나는 이 연말이 평생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블루라군 유황물에 아이폰을 팔팔 끓이기 전까지는.
블루라군에서 방수팩에 넣은 아이폰으로 풍경과 셀카를 몇 장 찍었다. 호텔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 아이폰 화면이 초록색으로 깜빡이더니 완전히 블랙아웃되었다. 방수팩은 푸른 우윳빛 블루라군 유황물로부터 인이폰을 지키지 못했다.
12월 31일. 오후 4시면 캄캄해지는 아이슬란드의 겨울에, 한 달 내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누리는 시즌에,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사람들은 더 일할 이유가 없다.
상점들은 일제히 문을 닫기 시작했다. 나를 호텔 앞에 내려주기로 계약한 버스 기사도 사정을 둘러대며 근처에 내려 줄 테니 걸어가라 했다. 될 데로 돼라였다. 어차피 나는 이미 길 잃은 신세라 "해피 뉴이얼!" 외치고 버스에서 내린다. 31일 이른 오후부터 1월 1일 공휴일, 1월 2일 일요일까지 꼼짝없이 고립되었다.
핸드폰이 없으니 시계, 지도, 알람, 카메라, 바우처, 전화까지 모든 기능이 마비되었다. 내가 이 먼 타국에서 핸드폰이 고장 나 답을 할 수 없다는 걸 실시간으로 연락하던 애인이나 가족, 친구들에게 알릴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아침에는 정신력으로 일어났다. 피곤해 잠들었고 정신이 들면 눈을 번쩍 떴다. 놀랍게도 휴대폰이 없는 며칠 나는 새벽 4~5시 사이에 저절로 깼다. 목적지까지 가는 픽업 버스가 오는 시간은 날마다 달랐다. 9시일 때도 10시일 때도 있었다.
그때쯤 나는 완전히 여행자 자아가 되어 가운만 입고 삼층에서 호텔 로비를 맨발로 오르락내리락했다. 무인 호텔 프런트엔 여전히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고, 고장 난 시계의 바늘은 가끔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기계실 문을 열고 보일러 박스에 있는 작은 전자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곤 했다. 2cm 남짓 4자리 숫자였다.
핸드폰은 처음에 액정만 블랙아웃 된 상태였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우연히 패턴 그려 넣기를 성공해 시리를 불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애인이나 친한 친구들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 더 시도하자 아이폰은 영원히 잠겼다. 말 그대로 영원히.
후에 한국에 돌아와 물어물어 고수가 있는 사설 업체에 찾아갔더니 1억을 줘도 잠긴 아이폰은 풀 수 없고 그 속 데이터를 찾을 수 없다는 질타에 가까운 말을 들었다.
그날 아침도 알람 없이 정신이 들자 깜빡, 눈을 떴다. 새벽 5시쯤이었다. 내 방 침대에서 1층 기계실까지, 시간을 확인하러 두어 번 오간 뒤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골든서클로 가는 픽업 버스가 올 시간에 맞춘 거였다.
버스를 예약할 때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와 있으라는 안내 사항이 적혀있었다. 나는 40분 일찍 나가 버스를 기다렸다. 춥고 컴컴하고 사람 없는 아이슬란드의 1월. 맞은편 성당 건물에 커다란 시계가 있어 시간을 알 수 있었다. 그날 처음 깨달았다. 30분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말은 30분 늦게 올 수도 있다는 말이라는 걸.
1시간을 기다렸다. 슬슬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두려운 게 없었다. 담배를 피우는 커플에게 다가가 내 버스가 오지 않는데 전화를 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들은 선뜻 전화를 빌려주었다. 순간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버스 회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마 많은 이용객들이 그쪽으로 문의 전화를 넣고 있었을 것이다.
고맙다며 핸드폰을 돌려주니, 커플 중 한 사람이 "오늘 날씨 때문에 많은 투어들이 취소 됐어. 우리도 뭘 할지 모르겠어. 아마 네 것도 취소 됐을걸?" 말했다. 그렇구나.. 나는 뒤돌아서다 말고 한 번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그럼 네 폰으로 내 이메일을 확인해도 될까? 투어가 취소 됐다면 메일이 왔을 거야." 그녀의 핸드폰으로 내 계정에 접속해 날씨 때문에 투어가 취소되었다는 걸 확인했다.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일어난다. 휴대폰이 없다고 여행을 망쳐야 할까? 길을 모르면 잃으면 그만이다. 딱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스키폴'. 호텔이 있는 거리 이름이었다. 그것만 알면 물어물어 어떻게든 이곳으로 다시 올 수 있다.
처음엔 무작정 큰길로, 다음엔 상점이 많은 거리로 접어들었다. 메인 스트리트를 구경하고 나니 트요르닌 호수나 썬보야저가 보고 싶었다. 도심에서 종이 지도를 구했지만 나는 길치였다.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 애쓸수록 점점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계획이 틀어졌다고 여행도 틀어져야 할까? 나는 계속 걷는다.
나는 길을 잃었다. 오른쪽으로는 허허벌판이 왼쪽으로는 바다가 있는 길을 한 시간을 넘게 걸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군데군데 창문이 깨진 버려진 창고들만 헐겁게 흔들렸다. 바람이 나를 휘감아 바다로 처박을 것만 같았다.
나는 점점 지쳤고 어쩌면 여기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추운 날 아무도 없는 길바닥에서 죽는다면,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나를 추적할까? 핸드폰이 고장 났기 때문에 이미 생활반응은 한참 전에 사라졌을 텐데. 그건 죽음이 아니라 단순한 핸드폰 고장이라는 걸 누군가 알아내기까지 무엇이 허비될까?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고 나서 얼마쯤 뒤 나를 발견할까? 계절이 바뀌어 봄일 수도 있을까? 내 시신은 비행기로 인도되겠지. 하루키 소설처럼 어머니는 내 시신에 값을 지불하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도 될까요?" 물을까?
온 세상으로 가는 길이 열린 그 허허벌판에서 폐소공포증이 밀려왔다. 어쩔 도리가 없어 걷다 걷다 노래도 불렀다. 여기서 살아나가면 누군가에게 이 얘길 끝내주게 재밌게 해야지, 결심하며. 그때 '내가 노래를 불렀다'는 말을 하기 위해 그대 떠난 여기, 노을 진 산마루턱에... 가사를 중얼거렸다.
내가 여길 걷기 전에 누군가 이 길을 걸었겠지. 그 사람은 누구일까. 어디로 갔을까.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사람이 분명 있다. 생각하며 삽으로 땅을 푸듯이 푹푹 걸었다.
한 시간쯤 더 걷자 웬 꼬마 아이가 보였다. 그 애에게 썬보야져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꼬마는 "여기서 멀어. 버스를 타야 해. 이쪽 바다는 확실히 아니야. 타운 쪽으로 가야 해." 말했다. 나는 버스 정류장을 찾을 자신이 없어서 되묻는다. 그럼 굳이 걸어가야 한다면 앞으로 가야 해 뒤로 가야 해? 꼬마는 "앞으로" 대답했다.
나는 외롭다 생각하며 걷는다. 이 외로움이야 말로 내가 원했던 것이라 생각하며 걷는다. 이번에는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를 만난다. 나는 묻는다. 썬보야져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해? 버스를 타야 하지? 그렇지? 남자는 조금만 더 걸으면 갈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래, 어디로 가야 해? 앞으로 가야 해? 뒤로 가야 해? 묻자 남자는 말한다. "옆으로. 길을 가로질러 계속 걸어가. 타운이 나오면 다시 길을 물어."
시시각각 열리기도 닫히기도 하는 여행자의 길. 나는 고맙다 말하며 길을 나선다. 길에서 얻은 친절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하는 수 없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수밖에 없다.
아이슬란드에 와 나는 반성만 했다. 사랑하러 왔는데 왜 반성만 시키냐고 하니 먼 산이 그게 그거라고 답했다. 사랑을 침엽수처럼 배워도 될까? 생각하며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