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의 줄행랑
어제는 호주에 살면서 몇 안 되는 정말 빡이 쳤던 날.
청개구리 조카가 문자로 나를 정말 빡치게 했다.
1년을 넘게 잘 조절하고 버티다가 어제 결국 터졌고
육자문두가 봇물처럼 입에서 터져 나왔다.
벌레와 괴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어젯밤에 나는 완전 돌았고,
일을 끝내자마자
차를 밟아서 천둥과 번개,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운전해서 씩씩거리면서
왔다.
어쩌면
내가 정말 화나면 무섭단 것을 조카는 알고 있었나 보다.
너 딱 기다려!
이 말에 조카는 가방을 싸들고 줄핼랑을 치고 없었다.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비가 내리는 그 순간에 아마도 우버를 타고 도망을 가신 것 같다.
혹시나 이비를 맞으면서 무거운 가방을 가지고 도망을 가는 중일까
찾으러 갔는데 그만큼 순진하고 멍청한 조카는 아닌 듯 역까지 갔지만 없어서 돌아왔다.
진정이 안돼서 방 안으로 들어와…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헛웃음이 나더라
10년 전에 말 안 듣던 고3 조카도
과외 안 받고 거짓말하다가 들켜서
너 딱 기다려하고 날아와보니 그 애도 짐 싸서 기숙사로 줄행랑을 쳤었는데
조카와는
줄행랑사건이 두 번이나 있다는 걸 알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냥 웃겼다.
화나서 머리 뚜껑이 열렸는데도
웃음도 나고 슬프기도 했다.
한국의 좁은 사회보가 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와서 사는 동안 건강해지고
내게 말은 안 했지만
연애도 해본 듯싶고
음식도 혼자 잘해 먹고
해외 생활을 그나마 잘 적응하는 듯했다.
이런 험난한 사건이 없었다면 미적거리면서
나의 신경을 건드려 터졌을 수도 있는 일을
줄행랑으로 덮어버렸다.
나가서 독립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안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난 그 애에게 좋은 미래도 보여줄 수 없었고
다정한 이모도 아니었고
친근하지도
살가운 이모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 아이에게 건넨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고
약속을 지켜냈다.
끝이 줄행랑이라서 안타깝지만
대단한 비극은 아니라서 다행이지 않은가.
오늘 하루종일 그 애가 남겨놓고 간 쓰레기와 빨래와 방청소를 했다.
이럴 수가 있는 걸까 혀를 찼지만
그냥 잊고 얼른 청소하고 먼지를 씻어내고 새 기운을 넣고
뜨거운 햇볕에 말리면서
밝은 에너지를 받게 했다.
아름다운 사람이 들어오길
밝은 에너지인 사람이 들어오길
축복했다 그 작은 방에게…
새로운 기운과 밝은 이들이 와서 새롭게 살아가고 싶다.
올해는 조용히 공부를 하면서 태양에게 감사를
하고 살려한다.
매일매일 태양에게 에너지를 받으려 한다.
작은 방아 그 철부지를 일년이나 품고 살아줘서 감사해 수고 했다.
이젠 너를 아껴줄 하우스메이트가 올거야!
인조이 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