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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햇살 Oct 09. 2024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고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꿈꿨던 세상

 2024년 8월 말, 나는 스페인 남부지역에 있었다.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입국하여, 말라가, 세비야, 그라나다, 론다, 코르도바와 같은 안달루시아 지역을 여행하였던 나와 와이프는 신혼여행의 여행지로 '스페인 남부'를 선택한 것에 만족했다. 한달여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부산에 돌아와 새롭게 시작하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 나가면서, 그리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을 처리해나가면서 살아갈터이다. 조금은 대책없이 일을 그만두었던 나에게 스페인과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읽었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이야기는 대강 이러하다. 미국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로버트 교수는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다. 그곳에서 파시스트와 싸우는 공화군 측의 폭파 전문가로 함께 전투에 임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는 마리아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사흘 정도의 시간 동안 그가 겪게 되는 일들, 그리고 사랑, 그리고 내면의 이야기들이 이 소설의 큰 내용이다. 이렇게 건조하게 쓰니, 이게 어떻게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대작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이 작품이 크게 다가왔던 이유는 사실 이 작품 그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론다'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로 이동하면 나오는 '론다'지역은 스페인 내부에서는 '투우'의 발원지로 유명하고, 그 아름다운 자연 경관, 그리고 론다의 '다리'(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당시 스페인에 직접 머물면서 묵었던 '호텔'이 있고 그 곳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이 작품에서 로버트 교수는 멋진 남자이다. 대의를 위하여 스페인 내전에 뛰어들었고, 그 속에서 사랑을 선택하고 또 죽음 앞에서도 용기롭게 싸움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한 동료들의 모습도 인류애를 보여준다. 이런 이야기를 스페인에서 읽으면서, 나는 여행이 끝난 이후 내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나에겐 폭파해야 할 다리가 있거나, 당장 몇일 뒤엔 보지 못할 연인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내야 할 삶은, 내가 살아갈 삶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문학의 힘을 빌려왔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나는 로버트 교수의 용감함을 가질 수 있었다. 당장 몇 시간 뒤면 나를 덮칠 파시스트 군 앞에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동료를 먼저 보내고 후방을 호위하기로 마음 먹는다. 당장 내일이면 나라는 존재가 없을지라도 내 삶의 의미는 스페인의 자유와 그리고 폭력에 맞서 싸운 대의를 지킨 삶이었기에 후회 없으리라. 로버트 교수처럼 멋지게 행동하고 생각하기엔 힘들지 몰라도, 적어도 나의 내면속에서는 그와 같은 마음은 있었다. 작은 것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약자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내가 살아왔던 지난 시간 동안 나를 힘내게 해주었던 가치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사무실에 가서 일정을 정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의 사업을 홍보하고, 지식을 공유하며 정보를 나누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기쁨을 느끼기도, 좌절을 하기도 하면서 일상을 지켜낼 것이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지치고 힘에 겨울 때, 내가 스페인에서 읽었던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속 가슴 뜨거웠던 '로베르토' 교수는 나에게 어깨를 툭치며, 위안을 건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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