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가 죽기전까지 고민했던 단 하나의 대작
2024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최근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작품을 꼽으라면, '문학', '영화', '음악'을 통틀어서 '파우스트'를 꼽을 것이다. 2022년이면 2년전이구나, 그 해에는 나는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어 내면서 내적으로 많은 성장을 해야만 했다. 함께 하던 사업에서 큰 변화를 겪었고, 나 스스로도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경험을 해내야 했다. 30대 후반의 남성에게 올 수 있는 변화란 변화는 다 겪으면서, 명리학에 빠지기도 하였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었다. 그 때 우연히 꺼내 읽게 된 책이 '파우스트'였다. 누구나 들어본 작가가 '괴테'이고, 누구나 한번은 들어본 작품이 '파우스트'이다. 특히 나처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박경리 님의 '토지'가 그러할지도 모른다.
왜 '파우스트'였냐고? 그때의 나에게는 무언가 깨달음이 필요했었다. 예수의 말에서도, 노자의 말에서도 해답을 찾기가 어려웠던 당시의 나에게,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 그리고 내 삶에 대한 '해답' 또는 '결론'이 필요했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해답을 찾았냐고? 그러진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살아갈 내 삶에 있어서의 큰 방향성은 잡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항상 작가들은 작품의 주인공에 자신을 투영하는 법이다. 지난 번 글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로버트 교수는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대변인일 터이다. 파우스트 박사도, 괴테라는 작가를 투영한다. 괴테라는 사람은 당시 속세의 모든 성공을 이룬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수십년 동안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고, 썼다 쉬었다를 반복하며 끝내 이 작품을 완성하고 죽음에 도달한 것은 그가 하고 싶은 마지막 단 하나의 이야기였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파우스트 박사는 세상의 모든 진리를 깨우친 사람이나, 악마와의 내기를 통해 젊음을 얻고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그 와중에 그는 사랑도 하고 전설 속의 인물들도 만나며 재미나는 경험을 마법과 함께 겪어낸다. 그런 그가 결국에 메피스토펠레스와의 내기에서 지지 않고, 승리를 거두면서 삶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022년의 나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배를 몰고가는 선장과도 같았다. 내가 탔던 배는 가야할 항로를 알지만, 그리로 가지 못하고 있었고 나와 함께 탔던 동료들은 나를 믿고 함께 배에 탔으나 함께 흔들림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나의 중심을 잡기 위해 매 순간 순간을 치열하게 버티고 있었고, 그 때의 나를 잡아준 것 중 하나가 '파우스트'였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운동'이었던 것 같고.
다시 '파우스트' 이야기로 돌아가면, 파우스트 박사는 속세에서의 부와 명예, 사랑과 같은 가치를 모두 쥐고 성공을 맛 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웃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비밀을 괴테는 이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내가 살아온 삶, 그리고 살아갈 삶에서도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랑'일 것이다. 내가 함께 하고 있는, 그리고 내가 만날 사람들 그리고 상황들, 그리고 주어지고 해야할 일들에 사랑을 쏟고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파우스트'를 통해서 얻었다.
꾸준히 읽고, 쓰고, 그리고 뛰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삶의 방식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