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아니었다.

계엄 그리고 현대 한국사회

by 유월의햇살

지난가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리고 두 달 후, 한국 사회는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은 이야기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음, 수준 높은 사고와 철학이 있는 작가였다면 쓰지 않았을 삼류 소설의 이야기 수준의 전개였다. 그리고 그 삼류 이야기를 종결시킨 것은 성숙한 시민들의 조직된 행동이었다.


나는 부끄럽게도 이번 사태에서 기여한 바가 없다. 내가 하였던 것은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뉴스를 듣고, 보고, 그리고 참여하였던 시민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지켜만 보았으나, 참으로 감사하게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행동하였다.


계엄당일, 국회에 들어오려는 군인들을 막고, 그들을 저지하던 국민들, 그리고 그 속에서 갈등하던 군인들, 모두가 하나였다. 무지한 자의 권한 남용으로 발생한 사태를 수습시키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은 혼란을 끝내었다.


그리고 며칠 전, 한강 작가는 노벨상 시상식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폭력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혹시 알고 있을까? 최근 들어, 한강 작가의 작품은 어느 시점보다도 많이 읽혔다는 것을.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 뿐만 아니라, 책 읽기를 시작하려는 이들, 그리고 한 동안 책을 놓았던 이들도 그녀의 작품을 읽었을 것이다. 높은 확률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을 작품 중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 대한 서사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철저한 한국의 현대사의 고증을 통해서 펼쳐진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그녀의 말 한마디는 그녀의 글과 그 톤과 모양이 일치한다. 말과 글이 같은 사람, 그리고 목소리마저 같은 그녀를 보면서 나는 그 사람이 가진 강함을 느꼈다. 자신의 평생을 걸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찾았고, 그것을 써 내려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 작가의 연설에서 나온 대목 중, 인간의 폭력성을 이야기하며 그 대척점에 그런 인간의 사랑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 누군가는 총을 쏘는 와중에 누군가는 자신의 피를 나누기 위해 줄을 선다는 대목이었고,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의 순간 중, 헌혈을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던 광주시민들의 모습을 이야기 한 부분이었다.


국회 앞에서 서울 시민들은 군인들을 맨 몸으로 막았고, 보좌관들과 국회의 직원들은 국회의원들이 있는 국회의사당을 사수하였다. 그리고 군인들 역시도 그런 그들을 폭력적으로 제압하거나, 유형의 힘을 행사하지 않았다.

수백만의 국민들은 매일 거리로 나와 그들의 목소리를 내며 여당 의원들에게 국민의 무서움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느꼈다.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 한강의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왜 우리의 세상은 이렇게 또 보이게 되었을까? 그리고 1980년과 2024년의 계엄은 어떻게 그 끝이 이렇게 달라졌을까?



우연이 아니었다. 시대는 변하였다. 개인화되었을지 모르나, 우리 젊은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기민하게 움직일 줄 안다. 휴대폰 속에서 실시간으로 모든 정보를 접하고, 또 정보를 송출할 줄도 안다. 1980년 독일의 어느 기자가 목숨 걸고 카메라를 찍고, 그 촬영물을 소중히 보관하지 않더라도 될 만큼, 우리 시대의 모든 이들은 개인 개인이 곧 언론이고, 기자가 될 수 있다.

계엄군이 왔으나, 우리 시민들이 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직접 지켜내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던, 남자의 목소리가 그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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