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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NA PINK Jun 17. 2022

처음

아름답고 값진 시간





# 타인과 맺는 처음

이 세상 모든 처음은 값지다. 


그래서 그런지 첫사랑, 첫 키스, 첫눈, 첫 만남 등 처음에 의미를 두는 단어들이 많다. 특히 타인과 함께하는 처음은 마치 소개팅을 하듯, 상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 그리고 묘한 긴장감까지 겹쳐  설렘 반 떨림반 상태가 된다. 무수한 처음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누군가의 뒤로 숨고 싶을 때가 있다. 가긴 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부끄러운 기분. 특히 문화센터나 학원 수강 첫날, 아르바이트 첫날처럼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맞이해야 하는 생경한 처음이 가장 어렵다. 


' 어떤 사람들이 함께할까? '

' 강사님은 괜찮을까? '

' 직장 선배는 친절할까? '


와 같은 기대감으로 시작해서, '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지? ' 와 같은 쓸데없는 걱정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그렇게 간질간질 거리는 가슴을 안고 간 그곳에서 낯선 이방인은 처음을 채워내야 한다. 타인과 맺는 처음이 아직도 어려운 이유는 ' 타인 '이라는 신경 쓸 거리가 하나 더 생기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 마음의 부담감이 있다. 나를 어디까지 드러내 보일지, 어떤 말과 어떤 단어를 골라 쓸지를 신중하게 고민한다. 잠시 잠깐의 침묵이 싫어 안 해도 될 이상한 농담을 던진 날에는 돌아오는 길에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얕은 후회를 한다. 나는 아직 유연한 처음을 맞이하진 못한다. 



# 엄마의 처음

처음 아이 배냇저고리를 사러 가던 날이 기억난다. 점원이 내어 주는 귀여운 배넷 저고리들을 보며 노랑이라는 색이 남녀 성별을 모두 아우르는 중성적인 색상이라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되고부터는 기다렸다는 듯 무수한 처음이 몰려왔다. 매일매일이 처음으로 채워졌다. 이렇게 많은 처음을 누군가와 함께 한 적이 있던가. 처음 고개를 가누던 날, 이유식을 처음 먹은 날, 보행기에 처음 앉힌 날, 미끄럼틀을 처음 태운 날처럼. 그렇게 아이의 처음과 나의 처음이 함께 맞닿아 있었다. 그렇게 값진 처음의 순간을 아이와 함께 하게 되는 일은 엄마로서의 가장 큰 영광이었다. 



# 처음의 다른 말, 시작 

뭐든 처음의 벽을 넘으면 그다음부터는 한결 가벼워진다. 한번 해봤다는 ' 경험 '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그런데 사실 처음의 문턱은 이제 갓 Lv.1에 들어섰을 뿐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완주해 내야  참가상이라도 받을 수 있다. 끈기가 부족한 나는 계속하기 위해서 소문 내기 방법을 활용하고 있는데, 이는 말 그대로 나의 처음을 동네방네 소문내는 것이다. 소문 내기의 가장 큰  장점은 타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본인은 몹시 신경 쓰인다는 것이다. 



아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뭐라고 하겠어? 
그래 너 그럴 줄 알았다. 
애초에 방방 뛸 때부터 알아봤어.라고 하겠지? 


문득 만난 친구가 ' 요즘엔 왜 글 안 써? '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지? 하는 일상 따위를 상상한다. 아무도 그러지 않을 테지만, 그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움직인다. 동기야 어쨌든 움직인다는 게 중요하다. 만년 2등만 하던 학생이 독기 어린 질투심을 원동력으로 1등을 거머쥔다고 해서 ' 너 왜 좋지 못한 감정을 동기 삼아 목적을 달성했니?'라고 트로피를 뺐지 않듯. 내게 있어서 ' 나의 처음 소문 내기 ' 도 그런 의미다. 그러니 밑져야 본전, 안 할 이유가 없다. 


내가 블로그에 굳이 100일 글쓰기를 진행하겠다고 제목을 다는 것도, 작가와 강사가 되고 싶다는 글을 쓴 것도 모두 그러한 맥락이다. 중간중간 그만두고 싶어지는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동여맬 하나의 끈을 찾는 것과 같다. 그러니 비록 아무도 안물안궁 일지라도 구태여 붙잡고 커밍아웃을 하길 추천한다.


' 나 자격증 딸 거야 ' 

' 나 영어 공부 시작했잖아 '

' 나 여름까지 7킬로 빼려고 '

' 나 올해 꼭 유럽 여행 갈 거야 '


하고, 소문을 내기 시작하면 이제는 정말 해내야 될 이유가 1가지 더 생긴 것이다. 그렇게 나의 처음이 처음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될 수 있도록, 나의 처음에 힘을 불어 넣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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