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가 있다. 최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말이다. 대게 ' 이 방법이 맞나? 잘 가고 있는 걸까? '로 시작되는 자기의심은 불안감과 함께 뒤섞여 현재의 나를 콕콕 쑤셔댄다.괜한 걸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 내가 가지 못했던 길이 맞았던 것은 아닐지 한동안 앉아 조근조근 지나간 나의 순간들을 되짚어 본다.
그러고는' 그래! 그래도 이길이 맞아 ' 하며 손과 무릎을 탈탈 털고 옷매무새를 고쳐 입고 몸을 일으키다 문득 든 생각.
' 그런데 이 돌부리는 누가 설치한 거지? 여기는 나만 다니는 길인데? '
우습게도 돌부리를 구석구석 알차게 박아 넣은 것도 나,
그리고 자기가 설치한 돌부리에 어김없이 넘어지는 것도 나,
툴툴 털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것도 나였다.
그 수 많았던 빌런이 모두 나였다니..
대게 갈 길은 멀고 마음은 급한데 생각만큼 속력이 따라와 주지 않을 때 어김없이 자기의심은 시작됐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장항준 감독이 출현하여 아내 김은희 작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예전에는 정말 글을 못써서 혼을 냈어요. 그런데 김은희 작가는 어제보다 오늘 0.001% 나은 사람이 돼요. 그게 세월이 축적이 되니, 어느 순간 고칠 게 없는 글이 됐습니다.
최고의 작가에게도 드라마틱한 성장의 순간은 없었다. 그저 어제보다 오늘이 0.001% 나아지는 것. 그것으로 현재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나도 조급함을 버리고 점을 이어 선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걸어 나가야겠다. 반보 아니 반에 반보 라도 앞으로만 간다면 그것으로 됐다. 만약 너무나 하찮은 속도에 불쑥 내 안의 ' 빌런 ' 이 나타나 빨리빨리 속도를 더 내라고 그렇게 천천히 가서 언제 도착할래?라고 닦달해도 괜찮다. 적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고 싸움은 밖에서가 아니라 나와 하는 것이다.
지나간 날 미련은 버리고 짧게, 그리고 흔들림 없이, 내 안의 ' 빌런 ' 과 당당히 맞서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