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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NA PINK May 13. 2022

죽음

겨드랑이 죽음론



 

작년 말 나와 지인들 몇이 한 후배네 집에 모여 조촐한 망년회 겸 신년회를 가졌다. 언제 이야기해도 질리지 않는 추억 팔이 해묵은 이야기와 각자 사는 이야기로 조잘거리기 바빴다. 맥주 한잔하다 문득,

" 나는 내 장례식장 추모사를 내가 하려고. 조문객들에게 미리 녹음 한 파일을 틀어주는 거지 "라고 지나가듯 툭 던진 그 말에 맞은편 후배 녀석 중 한 명이 갑자기 눈물을 보인다. 공연한 소리를 해 후배를 울렸나 싶어 당황했다. " 야 왜 그래 울지 마 "라고 이야기하는데,  왠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 겨드랑이 죽음론

고등학교 때 괴짜 수학 여선생님이 계셨다. 그때는 참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지금 와 떠올려 보면 40대 초반쯤 된 것 같다. 얼마나 괴짜였는지 수학 그래프를 공부할 때  x축과 y축을 상징하는 춤을 학생들 앞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오늘처럼 맑은 봄날. 선생님은 수업 시작 전 교실 창문 밖의 꽃나무를 보며, " 꽃이 참 아름다운데, 너희 들은 보았냐? "라고 질문하시며, " 이런 날은 야외 수업을 해야 하는데, 참 아쉽다 " 고 하셨다.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이 수학이라 아쉬우셨나 보다. 그러고는 갑자기 자신은 한쪽 겨드랑이에는 죽음을 한쪽 겨드랑이에는 삶을 나란히 끼고 산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갓 17살인 아이들이 선생님의 겨드랑이 죽음론을 공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만, 뭔지 모르게 멋진 말이라 느꼈다.



# 휴식 없는 시간

벌써 올해의 3개월을 보냈다. 1년을 4쪽으로 나눈 1분기가 지나 버렸다. 나이 든 사람에게 시간은 어떻게 흐르냐고 물으면, 그분들은 '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시간은 물과 같이 흐른다. 단, 나이 든 사람의 물은 폭이 좁은 도랑처럼 빠르게 흐른다 '라고 말한다. 젊은 사람과 나이가 든 사람 간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기보다는, 시간의 희소성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이해도에 따라 시간의 빠르기가 결정되는 것 같다.

  

영원한 건 없다는 깨달음을 얻을 때, 우리는 인생에서의  what이 아닌 why와 how에 집중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오늘 단 하루밖에 없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재차 질문했다고 한다.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야말로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핵심을 지켜 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매일 어제와 이별하고, 죽음과 가까워진다. 그 시간이 각자에게 얼마나 허락되는지도 알지 못한다. 제비뽑기 같은 생을 살면서  영원 속에  살 것처럼  매일을 대한다. 사실은 이 하루하루가 보석 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 가까이_

구태여 만물이 꽃 피는 아름다운 봄날. 꾸역꾸역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를 거론하는 이유는.

지금도 어느 누군가는 분홍 벚꽃이 피고 꽃비 지는 이 풍경을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 깨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괴짜 수학 선생님이 그러했듯 우리도 삶과 죽음을 나란히 겨드랑이에 끼고 살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생이 유한하지 않음을. 늘 인지할 수 있으니깐. 그걸 염두에 둔다면 내가 지금 맞이하는 이 아침이, 고심하여 고르는 점심 메뉴가, 하늘에 흐르는 구름이 모두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직접 쓴 추모사.



오늘 이곳에 귀한 발걸음 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저는 천상병의 귀천이라는 시를 참 좋아합니다.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라는 마지막 구절처럼 살기 위해 딴에는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나, 인생의 마침표만큼은 제가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여러분께 2가지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좋아해 주시고 아껴주셨던 마음과 또 저를 비난하고 미워했었던 마음 모두를 안고 갑니다.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기꺼이 나를 생각하는데 써주셨다는 것 그 자체가 의미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먼저 간 저를 가엾게 여겨, 미워했음을 눈 흘겼음을 미안하게 생각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오늘 절대로 울지 마시고, 부디 왁자지껄 떠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겪는 일을 조금 더 빨리 경험한 것뿐이니 말입니다.


소풍 같은 인생 재미있고 즐겁게 살다 먼 나중에 만나게 되면 아껴두었던 이야기 들려주십시오.

사랑하고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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