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에 진심이라는 것을
" 피아노를 마지막으로 배운 건 언제시죠? "
"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니깐, 거의 20년 다 되가죠 "
" 열에 아홉은 초등학교 6학년이 마지막입니다 "
피아노 학원 원장의 말에 둘 다 피식 웃었다.
아이 교육비에는 한 달에 5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쓰면서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배울 생각은 왜 못했을까.
헬스, 필라테스, 요가 같은 시도와는 뭔가 결이 다르다.
피아노라는 것은 말이다.
시작은 아이와 함께 찾은 서울 하수도 박물관에서였다.
낡은 피아노 한대.
그 위에 살며시 내려앉는 은은한 금빛 햇살과 적당히 시원했던 가을바람.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소리를 내던 피아노.
히사이시조의 Summer의 세 마디쯤을 연주할 때,
박물관 관리자의 " 문 닫을 시간입니다 " 의 말에 아쉽게 발걸음을 뗄 수밖에 없었다.
간질간질하게 손끝을 맴돌던 건반의 감촉에 다음날 박물관을 다시 가야 되나.
당근마켓에서 피아노를 사야 되나. 라며 진지하게 고민한 주말이었다.
바로 그 주.
여느 때와 같이 별다를 거 없는 메뉴로 배를 채우고 직장동료들과 커피 한잔 사러 가던 길.
눈에 띈 간판 ' 직장인 피아노 '
분명 늘 다니던 길.
수도 없이 다니던 길.
이 간판을 누가 갔다 놨을까.
이런 걸 시크릿이라고 하나.
가슴으로는 맞는데 머리로는 아니라고 하는 감정을.
사랑이 아닌 ' 피아노 ' 에서 느끼게 될 줄이야.
' 밥 안 먹고 배울 수 있겠어? '
' 시간은 어떻게 낼 건데? '
' 피아노를 다시 배운다고? 내가? '
이런 저런 내가 만든 어지러운 말들 속에서도 기어코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고 있는 나.
응 그러니깐 나란 여자는 그렇게 레슨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까지 3주.
3번의 레슨.
출근 전 30분.
점심시간 1시간.
' 직장인들이 많아서 아침마다 피아노 치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되더라고요 '
라는 원장님의 말이 무색하게, 매일 아침 혼자 전세 내며 치고 있다.
다른 연주자의 소리가 섞이지 않고, 오로지 내 연주 소리만 꽉 채워진.
이 아침시간이 요즘 나의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인정해야겠다.
나란 여자.
피아노에 진심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