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노 나츠오 <그로테스크>
이십 년 전쯤, 나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 빠졌었다.
거의 하루에 한 권씩, 닥치는 대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도서관에 가서 일본소설 코너를 기웃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 읽는 식이었다.
황당한 에피소드 하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와서 무작정 대여를 했다.
상, 하권으로 이루어진 2권이었다.
아마도 거의 밤을 새우며 읽었던 거 같다.
너무 재미있어서 휘리릭 읽었다.
다시, 도서관으로 간 나는 백야행을 반납하고 또다시 일본도서 코너를 어슬렁거렸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중>이 있는 게 아닌가!
상, 중, 하로 이루어진 3권짜리 책이었던 거다.
나는 대체 중간의 한 권을 통째로 건너뛰었는데도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던 걸까.
내용이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걸까.
<검은 집>을 읽었을 때에는, 아파트 복도를 걷는 게 무서웠고,
<모방범>은 내 인생책 중 한 권이 되었다.
(밑줄이 엄청 많이 쳐진 책이다. 읽을 때마다 밑줄이 늘어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 어딘가 흉터처럼 새겨진 책은 기리노 나츠오의 작품들이다.
그녀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3개의 작품만을 읽었을 뿐이다.
더는 손이 안 간다고 해야 할까.
너무 어두워서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 만 같다.
그래서일까.
읽고 싶지만 읽기 싫고.
들여다보고 싶지만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건.
도박과 엿보기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아이코의 장래 따위는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아이코에 대한 다카조의 악의였다.
-<아임 소리 마마 p.46>
'어떤 생활을 해왔는가.'와 '막 자랐다.'는 동의어가 아닌가.
-<아임 소리 마마 p.132>
"너도 늙었다, 얘. 게다가 악의가 가득 찬 얼굴이 되었어."
-<그로테스크 p.394>
악의가 가득 찬 얼굴이라...
거짓말하지 않는 얼굴 아닌가?
그만큼 자기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살아왔다는 거 아닌가?
진짜 무서운 건, 악의를 선의로 감춘 얼굴 아닌가?
저 위의 다카조처럼.
겉으로는 아이코의 잘못을 덮어주는 선의인척 하지만.
실은 아무렇게나 막 자라게 내버려 두겠다는 악의를 품은.
자꾸만 스릴러영화와 미스터리 소설이 당기는 걸 보니 아직도 마음이 어수선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