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1Q84>
십여 년 만에 다시 꺼낸 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느닷없이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예전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그의 인물 묘사가 떠올라서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남자는 셔츠의 맨 위 단추를 풀고 자잘한 무늬가 들어간 감색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했다. 양복은 블루그레이, 셔츠는 엷은 블루의 레귤러 컬러....'
'이를테면 준코 시마다의 비지니스 정장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화장은 약간만 하고 실무적인 큼직한 숄더백을 들고...'
'마린블루의 와이셔츠에 회색 플라노 슬랙스 차림이다.'
'짙은 남색 윈드 브레이커에 회색 요트파카와 청바지를 입은 캐주얼한 차림.'
'어깨폭이 넓은 회색 정장에 새하얀 셔츠, 짙은 회색 실크 넥타이, 얼룩 하나 없이 새까만 코도반 구두...'
'거친 무명천으로 만든 작업용 긴소매 셔츠에 크림색 면바지, 낡은 테니스화를 신었다.'
같은 것들.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대체 이렇게 까지 쓰는 이유는 뭐지?라는 생각을 종종 하고는 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가 보네,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블루그레이의 양복에는 자잘한 무늬가 들어간 감색 넥타이가 어울릴지 어떨지 조차 모르는 패알못이다.
그래서일까. 명품 슈트, 반짝이는 구두코, 보풀이 인 스웨터, 낡은 운동화... 정도의 표현밖에 하지 못한다.
플라노 슬랙스는 대체 무슨 옷인가. 코도반 구두는 뭐지? 준코 시마다라는 건 진짜 있는 브랜드인가.
그러다 문득 소설 속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노부인의 이야기가 처음 등장하는 1권 제7장의 이야기에 흥미가 일었다.
제7장 <나비를 깨우지 않도록 아주 조용히>
법으로는 (제대로) 처단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인간들을 개인의 힘으로 조용히 처리해 나가는 노부인은 우아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물론 그녀가 직접 그러한 '작업'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런 노부인이 화려한 꽃과 나무가 가득한 커다란 온실에서 정성 들여 키우는 건, 꽃도 나무도 아닌 나비다.
'나비'가 상징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걸까.
귀멸의 칼날에서도 귀살대원들이 다치면 가서 치료받고 쉬다가 나오는 곳이 '나비 저택'이던데.
나비를 위한 온실과 나비저택.
외롭고 어두운 번데기 시절을 지나 비로소 아름답게 태어나는 나비.
그러니 지금의 어둠은 곧 지나갈 거다.
지금 너는 나비가 되어가는 과정인 거다.
뭐, 이런 의미일까.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본다.
나는 누구의 나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