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5]첫 풀코스 완주를 위한 도전기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동네 뒷산을 헉헉 거리며
올라간 그날, 내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2020년 3월,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청계 매봉산 300미터 내외 산에 오르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이게 진짜 내 체력이 맞을까? 의구심을 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달리기를 하며 꽤 건강한 라이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착각이었다.
20대 후반에 잠시 하던 운동을 놓고, 다시 헤비 드링커(Heavy drinker)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꾸 지웠다. 술과 안주를 즐기다 보니 그전 내 모습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걸 알지 못했다.
"괜찮아, 금방 달리면 또 빠지겠지."라는 자기 위안만 삼을 때쯤 예전 체력을 믿고(?) 그렇게 오른 산이었다. 당시 코로나로 마스크를 야외에서도 착용할 때였다.
"마스크를 껴서 그럴 거야." 또 인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난 가장 뒤에서 산을 올랐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할 때 비로소 내 진짜 모습을 마주했다. 살이 이렇게나 쪄 있을 줄은 몰랐다.
운동을 시작해야 하는데, 등산은 자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달리기였다. 20대 후반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했다가 하프 대회까지 나가면서 꽤 진지하게 즐기던 운동이었다.
"저 예전에 하프까지 뛰었었어요!" 이 말은 통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뛰는 모습을 몰랐다. "처음부터 다시 하셔야 해요."
전직 엘리트 육상 선수 출신인 감독과 코치는 내가 달리는 모습을 찍어 보여주었다. "이게 내가 달리는 모습이라고?" 상상한 내 모습과 달리 둔탁한 움직임. 거뜬하게 뛰었을 것과 달리 힘겨워 하는 모습이 사진에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전의 기억을 지울 필요가 있었다. A그룹이라는 분들은 트랙을 거침없이 달렸다. "저분들은 얼마나 달린 거죠?" "최소 3년이에요. 오래 달리신 분들은 10년도 되었고요."
10년? 달리는 일을 10년이나 해야
저 정도는 되는 걸까?
달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생각했기에 아직도 A그룹의 사람들과 내 달리기의 큰 차이를 체감하지 못했다. 그저 달리는 폼이 다르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다 A그룹 사람들 뒤를 쫓아 뛰어보라는 감독님의 지시가 받았다.
"무리하지 말고요. 뛸 수 있을 만큼만, 530 페이스까지 해보세요."
"할 수 있습니다!"
그제야 잘 뛰는 사람들의 속력을 체감했다. 붙으면 멀어지고 따라갈만하면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 주어진 미션 530 페이스로 30분을 달렸다. 물론 그들은 한참을 더 달렸다.
정확하게 실력이 파악된 후에야 나는 다시 내 위치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뛰는 페이스 메이트도 생겼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몸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라 했다.
그렇게 봄을 맞았고 러너들의 성지로 불리는 잠수교 10k를 뛰었다. 이곳에서 난 PB 기록을 경신했다.
슬슬 자신감이 붙었다. 페이스 리딩을 하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서도 뛸 수 있게 되었으며, 속도감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여름만 잘 보내면 러너의 계절 가을이 올 것이라 했다. 기대감과 설렘으로 부지런히 뛰었다. 앞으로 내게 다가올 시련을 알지 못한 채
달리기 근육이 붙으니
제법 러너의 모습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