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92
이번 글은 다루기 조심스럽다. 양성평등이 강조되고 있는 세상에 '현숙한 아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남편을 위한 아내의 희생을 다루고 있기도 하니, 거슬리는 사람들이 다소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몽테뉴는 16세기 사람이다. 1500년대의 윤리관이 현대의 윤리관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첫 번째 이야기. 어떤 남자가 종양 때문에 오래 앓고 있었다고 한다. 환부를 주의 깊게 진찰한 결과 이 병은 나을 가망은 전혀 없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떠나는 것만이 확정돼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남자의 아내는 고통을 끝낼 확실한 명약으로 자살을 권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의 병을 함께 앓았듯이 낫는 것도 함께할래요, 두려움을 벗어 던지고, 우리를 이런 고통에서 해방시킬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쁘기만 할 거라는 걸 생각하세요. 우린 함께 행복하게 떠날 거에요." 이 말로 남편을 격려한 다음, 둘은 껴안고 바다로 투신했다고 전해진다.
두 번째 이야기. 케킨나 파이투스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부하들에게 사로잡혔다. 케킨나 파이투스의 아내 아리아가 남편과 함께 로마로 호송되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녀는 즉석에서 고깃배를 빌려 타고 쫓아갔다고 한다. 곧 그녀는 남편의 불운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할 징조를 내비쳤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만류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그녀의 결심은 굳었다고 한다. 아리아는 몇 번 자살을 시도했으나 주변 사람들에 의해 실패했다. 그러다 케킨나 파이투스가 자살을 강요받았다고 한다. 케킨나 파이투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러자 아리아가 남편을 격려하며, 남편이 쥐고 있던 단검을 자신의 손에 쥐고는 자신을 찔렀다고 한다. 아리아의 유언은 이것이었다. "봐요, 파이투스, 하나도 안 아파요." 케킨나 파이투스는 이 모습을 보자 곧바로 자신을 찔러 아내를 따라갔다고 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세네카의 이야기다. 네로 황제가 세네카에게 자살을 강요했다. 세네카는 그간 수행한 철학의 결론에 따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되, 아내인 파울리나만큼은 계속 살아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파울리나는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세네카, 저는 이렇게 위중한 상황에 저 없이 당신만 버려 둘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 삶의 고매한 본보기들을 보고도, 잘 죽는 법을 아직도 덜 배웠다고 여기시게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과 함께가 아니고 언제 더 잘, 더 합당하게, 더 내 마음에 흡족하게 죽겠어요? 그러니 저도 당신과 함께 가겠어요." 파울리나가 결의를 보이자 세네카도 동의했고, 사람들은 동시에 둘의 정맥을 끊었다. 세네카는 고통스러운 모습을 최대한 아내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다른 방으로 이동해서 어렵사리 죽었다고 전해진다. 네로는 이 이야기를 듣고 애꿎은 파울리나까지 죽으면 자신이 반감을 살 것을 우려해 파울리나의 상처를 봉합시켰다고 한다. 결국 파울리나는 살았다고 전해진다.
놀라운 이야기들이다. 아무리 준비하고 정신을 단련해도 죽음이 목전에 오면 공포에 결심을 포기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죽음으로써 사랑을 증명했다. 나는 물론 살 수 있는 사람은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 없이 못 살 정도로 사랑한다면, 기꺼이 따라가고 싶을 정도로 사랑한다면, 그들의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줘야 할 것이다.
재밌게도 세네카가 건강 상의 문제가 생기자 아내를 생각해 로마에서 물러나 시골로 향해 삶을 지속하기로 결심한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삶의 법칙이란 올바른 사람들에겐 자기 좋은 만큼 사는 게 아니라 살아야 하는 만큼 살아야 하는 것이오. 아내나 친구들 때문에 생명을 연장할 만큼, 그만큼은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 자, 그래서 죽겠다고 고집 피우는 자는 너무 까다롭고 너무 나약한 것이오. 많은 탁월한 인물들이 그랬듯이, 남을 위해 삶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은 마음이 위대하다는 증거요." 그 후 파울리나의 죽음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아 세네카는 죽음과 삶을 동등한 것으로 생각했던 듯하다. 아무튼 사랑에도 등가의 여러 형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죽음까지 갈 필요 없이, 삶에 걸쳐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누구도 사랑을 의심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사랑 속에서 서로 행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