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24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자신을 암살하려는 루키우스 킨나를 불러 자신이 암살 계획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용서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감화한 킨나는 그의 굳건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프랑수아 드 기즈 공작은 자신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암살자를 당당히 마주하고 회유했다. "내 종교는 당신이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죽이려 들었던 게 분명한데도 당신을 용서해 주라고 명하오. 가시오." 그래서 그 암살자는 물러갔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또 다른 배신을 당해 암살당한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화공으로 사마의를 잡으려다 소나기로 실패하여 사마의를 놓치자 이런 말을 한다. "謨事在人 成事在天(모사재인 성사재천)", 즉 계획은 사람이 꾸미지만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는 것이다. 몽테뉴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인간의 지혜란 허망하고 변덕스럽다. 우리의 모든 계획, 우리의 결심이나 방비들을 가로질러 항상 사태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운수이다." 물론 어떤 일이든 기초와 실력이 든든해야 능히 잘 해낼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운이 작용해야만 최대의 성공을 이룰 수 있다.
몽테뉴는 따라서 이렇게 주장한다. "각 사건의 다양한 특성과 여건이 야기하는 어려움으로 인해 최선책을 간파하고 선택할 수 없는 애매하고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길은, 내 생각에는 이것이다. 즉 그렇게 해야만 할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가장 정직하고 공정한 편에 투신하는 것. 어느 길이 지름길인지 확신할 수 없으니, 언제나 곧은 길로 가는 것." 예를 들어, 몽테뉴가 보기에 암살 음모에 어떻게 대응할지 전전긍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걱정에 압도당하여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것이다. 몽테뉴는 잠재한 위기에 위축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운명을 마주하라고 충고한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그 어떤 고귀한 일도 이룰 수 없다. (중략) 지나치게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신중함은 고매한 일을 수행하는 데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 특히 몽테뉴가 계속 강조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 있다면 마주하지 못할 운명은 없다.
나는 이번 글을 읽고 피델 카스트로의 일화가 생각났다. 그를 암살하기 위해 미국이 미인계를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암살 직전의 순간에 카스트로는 자신을 쏘려던 여자의 총을 스스로 가슴에 들이밀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날 쏠 수 없을걸. 넌 나를 사랑하니까." 그 말을 들은 여자는 감정이 살아나는 바람에 암살을 포기했다고 한다. 사실 이런 대응은 모든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패기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야만 이룰 수 있는 경지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기만 한다면 어떤 운명 앞에서도 당당하게 받아들이기에 근심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글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물론 운명에 대한 막연한 순종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자연의 힘으로 췌장암을 치료하려다 죽었다. 싸울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운명의 힘을 거스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몽테뉴의 말이 옳다. 어떤 운명이 오든 그것을 긍정하는 마음은 니체의 철학과도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삶과 운명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행복의 근원이 아니겠는가!
다만 몽테뉴의 논증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는 시인의 훌륭한 솜씨마저 운에 의한 것으로 보며 운을 과대평가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니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과 운명에 맡겨야 할 것을 구분하는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