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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추억여행

by 러너인

2024년 여름, 어쩌다 오키나와에 왔다. 고3이 된 첫째 딸과 둘만의 5박 6일 일정이다. 아이가 크니 내가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고민도 커진다.

토요일에 입국해서 공항에서 멀리 떨어진 북부 오리온모토부에 왔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로 연박을 잡았다. 오키나와가 어디에 있는지 여기 와서 알았을 정도로 서둘러 준비한 여행이다.

문득 리조트 창밖에 보이는 바다 저 멀리 보이는 혹 같이 튀어나온 산이 눈에 띈다. 저기는 어딜까? 섬 밖의 섬. 섬 안의 섬. 찾아보니 이에 섬이다. 제주도와 우도 같은 느낌. 근처 모토부항에서 배 타고 30분이면 가는 섬. 급 호기심이 생겨서 가보기로 했다.

이에 섬의 상징이자 이에섬의 작은 산인 닷츄(城山). 그래! 오늘 내가 널 꼭 만나러 갈게! 딸과 무사히 배를 타고 9시 30분쯤 이에 섬에 도착해서 전기자전거를 빌려서 섬 투어를 시작했다.

와지 해변 전망대에 가려다가 길을 헷갈려서 다시 올라오는데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우비를 입어도 소용없는 강한 폭우다. 비바람에 눈이 안 떠지고 빗물을 맞을 때마다 휴대폰 화면이 바뀌면서 구글지도 경로안내가 멈춘다. 비상이다.

빗물로 따갑지만 겨우 애꾸눈으로 자전거를 몰고 간다. 뒤따라오는 아이가 걱정되지만 내 앞가림도 급급해서 그저 무사히 따라오기만 바란다. 이미 온몸은 쫄딱 젖었다. 죽기 살기로 페달을 밟는다. 차도로 가는데 차가 없어서 천만다행이다.

그 난리통에 갑자기 눈앞에 이에섬의 상징인 산 정상(닷츄라고 부름)이 나타난다. 눈이 번쩍 뜨인다. 이왕 다 젖었으니 자전거에서 내려서 기념사진을 찍고 가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대여점에 복귀해서 자전거를 반납했다. 첫 식당에 도착했지만, 문을 닫았다. 15분을 걸어 두 번째 식당에 갔지만 영업을 하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서 세 번째 식당에 도착하니 한참 그릇을 씻고 정비 중이다. 식사되는지 물으니 오늘은 쉰단다.

8시 이후로 6시간 넘게 먹은 것 하나 없이 자전거를 타고 비를 쫄딱 맞고 젖은 채로 40분을 걸었는데 찾은 식당 세 군데 모두 영업을 안 한다니. 나도 딸아이도 지치고 힘이 빠졌다.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방금 식당의 여자분이 뛰어와서 묻는다. 지금 바로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았으니 같이 차로 가자고 했다. 따뜻한 도움의 손길에 같이 차에 올랐다.

걱정이 된다. 4시 정각에 이에섬에서 모토부항으로 출항하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이렇게 멀리 가면 어쩌지? 고민하다 파파고로 상황을 말씀드리니, 빨리 먹고 시간 맞춰 데려다 드린다고 걱정하지 말라 신다. 환송까지 해주시겠다며 웃는다.

어제 큰 행사로 대부분의 식당이 참가해서 오늘은 안 하고 거의 쉰다고 한다. 본인들도 오늘은 영업 안 하고 정리하느라 온종일 식사 못 해서 지금 아침 겸 점심 먹는 거라고. 아빠와 딸이라며 웃는다. 나도 딸이랑 왔다고, 이에섬에 관광 왔다고. 오늘 숙박이면 맥주를 마셨을 텐데 아쉽다고 웃는다. 파파고에 이미 우리는 친구라고 써서 보여준다. 참 따뜻한 분들이다.

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라커 짐 보관함을 열고 짐 찾아서 무사히 들어간다. 밖에 항구에서 계속 손을 흔드신다. 같이 큰 소리로 뭔가를 외치기도 하시고, 우리가 작게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신다. 너무 감사하고 감동했다. 세 분 모두 비를 계속 맞으며 팔 아프지 모르고 계속 손을 흔드시는 모습에, 내가 이런 따뜻한 도움과 환영을 받는 자체로 울컥했다.

잠시 후 DM이 도착했다. “지금의 기적은 깜짝 선물입니다. 평소에는 울지 않습니다” 나도 답했다. “저도 오늘 딸아이와 자전거 여행 중 비를 쫄딱 맞고 옷도 다 젖어서 겨우 자전거 반납하고 늦은 점심을 먹으려다 따뜻하신 분들 만날 수 있었어요. 오늘 소중한 세 분을 만나려고 그렇게 폭우가 왔나 봅니다.”

이에 섬에서 받은 따뜻한 식사, 현지 분들과 찍은 인증사진. 뱃시간 때문에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서 번갯불에 콩 볶듯 흡입한 돈가스 정식. 파파고로 주고받으며 웃던 대화들까지.

어쩌면 닷추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따뜻함이 모여 우뚝 서 있는 마음의 고향이 아닐까. 이에 섬과 닷추, 딸과의 우정 여행, 삼고초려 후 만난 따뜻한 식사.


보이지 않을 때까지 비 맞으며 응원하고 손 흔들어주신 천사 같은 가족식당 '단란한 집'을 잊을 수가 없다. 가끔 세상은 눈물겹도록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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