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무엇을 애원하고 있는가

by 러너인

참아라. 나의 마음아. 너는 고통받을 운명이다. 그 운명을 사랑하라. - 호메로스 -

EBS 인문학특강 <김상근 교수의 르네상스: 제1강. 나는 누구인가>을 들었다. 호메로스가 쓴 대서사시 '일리야스'와 '오디세이아'에 대한 이야기다.

일리야스는 트로이 전쟁에 관한,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의 10년 간에 걸친 귀향 모험담이다. 고향에선 아내 페넬로페가 수많은 구혼자들의 유혹을 뿌리치며 버티고 있고, 오디세우스는 부하들과 괴물과 자연재해를 뚫고 한 걸음씩 집을 향해 달려간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가 전우들을 먹어치우는 상황에서도 지혜를 내어 전우들을 최대한 살려서 배에 오른 오디세우스. 그가 더 큰 시험의 순간을 맞이할 때 자신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참아라. 나의 마음아. 너는 전에 키클롭스가 전우들을 먹어치울 때 이보다 험한 꼴을 참지 않았던가."

인내하는 사람이 바보라고 외치는 요즘 세상에서 2,800년 전 그리스인 호메로스가 남긴 '참아라. 나의 마음아'는 어떤 의미일까.

호메로스는 우리에게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운명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는 고통받을 운명이다. 그 운명을 사랑하라.'라고 말한다.

김선우 시인의 네 줄 시, <고쳐 쓰는 묘비>

"태어날 때의 울음을 기억할 것
웃음은 울음 뒤에 배우는 것
축하한다 삶의 완성자여
장렬한 사랑의 노동자여"

우리는 울면서 태어났다. 디폴트가 울음이고 고통받을 운명이다. 고통받지 않는 순간이 행복이고 기쁨이지만 그것은 영원한 추구의 대상은 아니다.

행복한 척, 기쁜 척 하지만 한 인간이 살면서 행복이라는 걸 느끼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만 사랑하기로 한다면 그 삶은 얼마나 짧을까.

고통까지 사랑해야 온전히 주어진 삶을 사랑할 수 있다.

나는 고통 앞에서 이렇게 고쳐 쓴다.
"러너여. 생각하건대 이번 일도 언젠가는 나에게 미화가 될 것이오."
"작가여. 생각하건대 이번 일도 언젠가는 나에게 책이 될 것이오."

괴물 세이렌이 노래로 유혹하는 바다 위,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말한다.
"내가 그대들에게 풀어 달라고 애원하거나
명령하거든 그때 그대들은 더 많은 밧줄로
나를 꽁꽁 묶으시오."

두렵고 가보지 못한 길 앞에 선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그대들에게 멈춰 달라고 애원하거나 명령하거든 그때 그대는 더 높은 언덕으로 나를 힘껏 이끄시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애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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