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뛸 때 사타구니 쓸리는 거 어떻게 하죠?" "바셀린이 명약임. 투인원 입어도 바셀린 안 바르면 쓸림." "제발, 바셀린을 과할 정도로 발라요." "2인치 쇼츠 추천" "투인원+바셀린=무적"
일요일 2시간 20분주 번개런이 끝날 때쯤 찌릿한 통증이 있다. 아차. 방심했다. 고작(?) 2시간이라 에너지젤만 챙기고 설마 다리가 쓸릴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쓴웃음이 났다.
애써 아픔을 누르고 주어진 시간을 마쳤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일단 화장실에 갔다. 살이 접히는 곳이 선명하게 쓸려있다. 웃음이 난다. 이게 얼마만의 쓸림인지. 집을 향해 다시 2km가 넘게 걸어야 한다.
고민하다 속옷을 벗었다. 걸으면 속옷이 닿아 쓰라려서 방법이 없다. 다시 바지를 걸치고 순례길을 떠난다. 여름은 여름이고 장거리는 장거리다. 아무것도 모르던 첫 풀코스 때 겪을 일을 5년 차 러너가 되어 겪으니 웃음이 난다.
으이그, 바셀린 하나면 발랐으면 될 것을... 최대한 살이 닿지 않게 걸어야 해서 어기적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우스꽝스럽지만 최대한 티를 안 내려 천천히 걷는다. 한 걸음 걷고 바셀린을 떠올리고 한 걸음 걷고 준비가 부족했던 자신을 돌아본다.
역시 정답은 바셀린이다. 특히 '제발... 과할 정도로'라는 말처럼 찔끔 바르면 안 된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살과 살, 살과 옷이 만나는 곳에 넘치도록 듬뿍 발라야 문제가 없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바셀린에는 통하지 않는다. 바셀린은 과해야 산다. 투인원에 바셀린이 더해지면 '무적'러너로 탄생한다.
장거리 러너의 필수품, 시대의 명약, 러너를 무적으로 만들어주는 바셀린.
나를 무적으로 만드는 멘털 바셀린은 뭘까?내 마음의 바셀린은 러닝과 쓰기, 그리고 실천이다. 달리고 쓰고 끊임없이 도전하기. 이것이 러너로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풀코스나 울트라마라톤을 준비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셀린이다. 거친 고통의 순간을 미끄러지듯 이겨내게 하는 도구다. 내 삶을 무적으로 만드는 작지만 소중한 나만의 습관이 바셀린이다.
어기적거리며 걷다가 초보러너 시절을 떠올린다. 첫 춘천마라톤 때 풀코스를 달리고 씩씩하게 걸을 때, 앞에 수많은 러너들이 어기적거리며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장관이 펼쳐졌던 기억이 난다. 지금 내 모습이 딱 그렇다.
오늘도 나는 마음에 바셀린을 바른다. 작은 습관이 모여 나를 무적으로 만든다. 달리고 쓰고 도전하는 한 우리는 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