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릴 때마다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하루키 책을 필사하고 새벽에 뛰고 글을 쓰는 루틴. 그때 알았다. 몸을 움직이며 쓰는 글과 앉아서 머릿속으로 쓰는 글이 다르다는 걸. 블로그를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쉬움이 밀려왔다.
조회수 1, 2... 아무리 열심히 써도 읽는 이가 거의 없었다.
새벽마다 혼자 달리는 것도 좋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뛸 용기는 없었다. 마치 SNS를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바라면서도 정작 자신을 드러내는 건 두려워하는 마음. 안전하게 소통할 방법은 없을까? 네이버 카페를 검색하다가 사람들이 많은 러닝크루를 발견했다. 나처럼 달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가입만으로도 러너들과 연결된 듯 기뻤다. 블로그에 달리기 이야기를 쓰는 즐거움에 더해 카페 글을 읽는 재미가 생겼다. 사람들의 러닝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나도 달리면서 배운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졌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 카페 글은 회원가입하면 읽을 수 있었지만, 글을 쓰려면 얼굴이 나온 사진과 함께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얼굴을 공개하기가 부끄러웠고,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는 일이 불편했다. 임계점을 넘어야 물이 끓듯, 어느 날 문득 카페에 글을 올리고 싶어졌다.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내 안에 있는 내향인의 마지노선을 깼다. 사진 하나를 골라 자기소개 글을 올렸다. 이름, 나이, 출생연도, 직업, 사는 곳, 자주 달리는 코스, 카페를 알게 된 경로까지. 카페 가입 후 3개월간의 눈팅 끝에 드디어 커밍아웃했다. 어떤 사진을 올릴지 수없이 망설이며 어떻게 나를 소개해야 할지 고심하다가 결국 용기를 냈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브런치가 작가 승인을 받아야 글을 쓸 수 있듯 그 카페도 마찬가지였다. 러닝크루에 글을 쓸 자격이 생기자 매일 뛰며 블로그에 올린 글을 카페에도 함께 올리기 시작했다. 구독자가 생기고 “잘 보고 있어요”라는 댓글이 달리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2,847회 방문, 작성글 107개, 댓글 2,328개. 러닝크루인지 글쓰기 카페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뜨겁게 소통하는 열심멤버가 되었다. 카페에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조회수가 5회 남짓하던 블로그를 다시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왜 내 블로그는 보는 사람이 없을까? 내 글이 검색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증이 생겼다. 우연히 블로그를 키우는 방법을 무료로 알려준다는 글을 보았다. 검색 알고리즘에 따라 글을 써야 검색 결과에 노출된다고 했다. 저품질 블로그는 아무리 글을 써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고 고품질 블로그만 노출된다는 이야기였다. 내 블로그가 저품질이라는 걸 인정하긴 싫었지만, 사실이었다. 노출지수는 형편없었다.
카페에 글을 쓰고 댓글을 남겼다. 카페에 글을 올리기만 하면 같은 글이라도 금세 수백 명이 읽고, 수십 명이 댓글을 달았다. 글 쓰는 맛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 블로그였다. 카페는 어쨌든 남의 집이었다. 남의 집을 아무리 예쁘게 꾸며도 내 집은 아니니까.
공교롭게도 그 시기 ‘글쓰기로 수백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돈 벌기 영상을 보게 되었다. “돈 안 되는 글만 쓰며 시간 낭비한다”던 누군가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그때 눈에 띈 블로그가 있었다. 전문 교육을 통해 ‘무조건 고품질 블로그’를 만들어 준다는 광고였다. 뭐에 씌이려면 씌인다고 했던가. 홀린 듯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예. 고품질 블로그에 관심 있어서 전화드렸는데요."
"네. 잘 연락하셨어요. 저희는 다른 업체처럼 몇 번 컨설팅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파워블로거가 되실 때까지 1:1로 끝까지 관리해 드려요. 그게 저희 교육의 가장 큰 장점이에요.”
"제가 블로그를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조회수가 너무 안 나와서요."
"그럼 그 블로그는 이미 저품질이에요. 새 블로그를 하나 새로 만드시고, 저희가 안내해 드리는 대로만 따라 하시면 금세 고품질 블로그로 키우실 수 있어요"
"혹시... 비용이 어떻게 되나요?"
"비용은 160만 원이세요. 비싼 것 같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는 무조건 ‘고품질 블로그’를 만들어드리니까요. 실제로 저희랑 함께 하셔서
고품질 블로그 되신 뒤에 바로 광고 협찬받아서
금방 더 많이 버시는 분들도 많아요.”
"관심은 있는데... 비용이 조금 부담되네요."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블로그 컨설팅을 저희만큼 잘하는 곳은 없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결국 광고였던 것 같다. 후기를 꼼꼼히 찾아보니 '고품질 블로그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파워블로거 인증글이 유난히 많았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고 매일 쓰는데도 블로그를 키우지 못하는 건 글을 못써서가 아니라 방법을 몰라서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너무 수업료가 비쌌다.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블로그를 키운다는 건 말이 안 돼서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우연히 100만 원이 생겼다. 일단 비상금으로 잘 넣어두기로 했다. 며칠 뒤, 저번에 문의했던 그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블로그 컨설팅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희가 저번에 말씀드린 부분, 아직 고민하고 계시죠? 사실 일반 직장인이 그 비용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아서 다들 망설이시더라고요. 선생님처럼 자기 꿈을 이루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거든요."
“네... 사실, 비용이 좀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좋은 기회가 생겨서 전화드린 거예요.”
“사실 저희는 교육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할인을 해드린 적이 없어요. 그런데 며칠 전에 선생님처럼 문의하신 분이 계셨어요. 그분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직장에 다니지 못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절박한 마음으로 블로그를 키워보려 하셨죠. 그런데 비용을 듣더니, 아무 말도 못 하시더라고요. 부담이 크셨던 거예요. 그날 저희 운영진이 긴급회의를 했어요. 원칙에는 맞지 않지만, 이분은 우리가 도와드려야 하지 않겠냐고요. 결국 파격적으로, 100만 원에 진행해 드리기로 했어요.”
"그래서 좋은 기회가 생겨서 전화드린 거예요. 사실 저희는 교육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한 번도 할인을 해드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선생님처럼 며칠 전에 어느 분이 문의하셨는데 정말 블로그로 자기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하셨어요. 교통사고로 크게 사고가 나셔서 직장에 다니지 못하게 되신 상황이라 절박한 심정으로 블로그를 키워보려고 하시는 상황이더군요. 근데 비용을 듣더니 말이 없으시더라고요. 부담이 크셨던 거죠. 그래서 전화를 끊고 저희 운영진이 긴급회의를 해서 결정했어요. 이건 원칙과 안 맞지만 이 분은 상황도 그렇고 우리가 도와드려야 하지 않겠냐 하고요. 결국 이 분께 파격적으로 100만 원에 해드리기로 했어요."
"와. 정말 많이 할인해 주셨네요."
“네. 대신 그분께만 특혜를 드리는 건 저희 원칙에 또 맞지 않아서요. 이번 주에 한해서 그분처럼 문의하신 몇 분께만 똑같은 혜택을 제공해 드리기로 했어요. 대신, 절대로 다른 분들이 아시면 안 됩니다. 비밀은 꼭 지켜주셔야 해요.”
"100만 원이죠...? 조금 더 고민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딱 세 분만 이 혜택 적용하고 종료하려고요. 저희가 순차적으로 전화드리는 거라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요.”
"며칠만... 더 고민하고 연락드리면 안 될까요?"
“저희가 오늘까지만 100만 원 파격 혜택이 가능해요. 더 길어지면 사람들이 알게 되고, 기존에 등록하신 분들이 문제가 되거든요. 그래서 오늘 저녁 6시 전까지만 연락 주시면 혜택 적용해 드리고요, 그 시간이 지나면 죄송하지만 원래 가격 그대로 진행할게요."
"예...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자 가슴이 뛰었다.
'하늘이 나를 돕는 걸까? 이 교육을 들으라고, 파워블로거가 되어 인생을 바꾸라고 이 100만 원이 내게 온 걸까? 그런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 믿고 교육을 신청하지? 아니, 넌 네 꿈을 이루는 데 단돈 100만 원도 못 쓰는 거야? 너의 꿈이 그 정도였어?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돈을 벌려면 돈을 써야지. 오늘 이 기회를 놓치면 파워블로거는 날아간 거야. 영영 끝이라고.'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마음을 정했다.
'그래, 이 돈은 투자다. 누구보다 글을 잘 쓸 자신도 있고 성실하니 일단 이 분들에게 제대로 배워서 정말 상위 1%의 파워블로거가 되자. 언젠가 이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음을 증명하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선생님. 결정하셨어요?"
"네! 할게요. 고품질 블로그 꼭 만들고 싶어요. 저도... 가능할까요?"
"당연하죠. 저희가 블로그 전문가인데요. 세심하게 컨설팅해 드릴 테니 꼭 파워블로거가 되실 거예요. 지금 내신 교육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네... 입금할게요. 잘 가르쳐주세요."
결국 돈 100만 원을 보냈다. 잠시 후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교육 영상 몇 개가 첨부되어 있었고, 이 모든 내용은 자신들만의 노하우이자 지적재산권이 있으니 절대 유포하거나 교육생이 아닌 사람에게 공유하지 말라는 경고가 적혀 있었다. 주차별로 미션이 달랐다. 검색 알고리즘을 타야 한다며 처음엔 새 블로그를 하나 만들라고 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30일 동안 매일 1일 1 포스팅을 하라고 했다. 이웃 500명을 만드는 주차에는 매일 죽기 살기로 사람들에게 이웃 신청을 하고 댓글을 달라고 했다.
제일 힘든 건 글의 분량이었다. 길게 써야 했고, 그 글은 절대로 다른 글을 복사해 붙이는 건 금지였다. 그들만의 철칙이 있었다. 어기면 저품질 블로그가 된다고 했다. 사진을 반드시 넣어야 했다. 그 사진은 무조건 본인이 찍은 사진이어야만 했다. 퍼온 사진이나 복사한 사진은 절대 안 됐다. 글도 마찬가지였다. 글을 복사하면 안 되고 반드시 자기 손으로 직접 타이핑을 쳐야만 하는 등 제약사항이 많았다.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처음엔 자유롭게 글을 써보라고 해서 새벽 달리기 후 느낀 점을 에세이 형식으로 써서 며칠간 올렸다. 그에게 전화가 왔다. "와! 선생님은 필력이 일반인이 아니시네요. 평소 글을 좀 쓰셨나 봐요. 선생님 정도면 제가 보장하는데 글쓰기 실력으로 상위 1% 세요. 다들 처음에는 열심히 따라오시는데 글쓰기 감각이 없으셔서 결국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근데 선생님 글은 달라요. 정말 대박 나실 거예요."
그의 전화를 받고 기분이 좋았다. '정말일까? 나도 상위 1% 파워블로거가 될 수 있을까?'
자유 주제로 쓰는 주간이 지나고 이웃을 추가하는 미션이 떨어졌다. 틈틈이 이웃을 추가하고 정성스럽게 댓글을 달았다. 기계적인 이웃 추가 요청이 아닌 문구에 정성을 담았더니 짧은 시간에 많은 이웃이 생겼다. 그다음은 한 가지 주제로 30일 이상 꾸준히 글을 올리라고 했다. 글은 몇 자 이상으로 길게 써야 하고, 사진은 본인이 직접 찍은 것만 가능했다. 직접 타이핑해야 하고 다른 글을 복사해서 붙여 넣으면 안 된다는 모든 룰까지 지키면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달린 후 감상을 적는 건 식상해서 달리기에 관한 책을 찾아서 소개하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서 달리기 책을 싹쓸이해서 리뷰를 썼다. 곧 한계가 왔다. 책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먹지도 않은 맛집 리뷰를 쓴다거나 내용이 없는 일상 글을 쓰는 것도 주제와는 맞지 않았다. 고민이 시작되었지만 별다른 가이드는 없었다. 누군가 정기적으로 물어보고 코칭해 주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시간이 될 때 카톡을 남기면 그가 휘리릭 보고 톡으로 잘하고 있다거나, 사진을 한 두 장 더 추가하라거나 하는 무성의한 피드백 정도였다.
결국 달리기 책 리뷰가 소진되니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막막해졌다. 그때 미션이 아마 일상적인 글은 쓰면 안 되고 어떤 한 분야에 전문적인 내용으로만 글을 계속 써야 하는 미션이었다. 매일 쓰지 못하는 날이 시작되고 소재를 찾는 데 어려움이 생겼다. 그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내가 연락을 하던 안 하던 그는 관심이 없었다. 어느새 내 블로그는 교육을 시작하기 전과 똑같은 상황이 되었다. 세심한 관리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결국 100만 원이 파워블로거의 꿈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가버렸다. 자책감이 밀려왔다. 파워블로거가 될 때까지 가르쳐준다고, 무조건 만들어준다고 했는데 내가 그 미션을 완수하지 못해서 못한 거라고. 나는 이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깊은 자괴감에 한동안 사로잡혔다. 보이스피싱을 당하거나 사기를 당한 사람처럼 속으로 끙끙 앓았다. 차라리 그 돈을 가족들에게 썼으면 어땠을까. 유튜브 돈 벌기 영상이 원망스러웠다.
블로그에 집중하느라 잠시 소홀했던 네이버 카페에 다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사진을 만났다. 마치 사진작가가 찍은 듯 멋진 달리는 포즈의 인증사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