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병원에 갔다.
복부에 뭔가 만져지는 불편함이 있어 가까운 병원에 들렀다가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급하게 일정을 잡고 함께 병원에 갔다. 검사가 끝나고 나오자 엄마가 내 손을 붙잡았다.
"앉아봐라. 너한테 줄 게 있다."
엄마가 가방을 열더니 봉투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 이게 뭐예요?"
"비상금 이백만 원이다. 잃어버리지 않게 잘 넣어라."
"웬 돈이에요, 엄마?"
"내 나이가 올해 여든일곱이다. 왠지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진단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바로 입원해야 할지도 모르니 가지고 있어라."
가슴이 먹먹했다. 집에 와서 엄마가 준 돈봉투를 서랍 깊숙이 넣었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이 돈봉투를 준비하셨을까. 선고를 기다리듯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며칠이 흘렀다. 일하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승우야. 나다."
"예, 엄마. 검사 결과는요?"
"혹은 맞는데 큰 병이나 암은 아니라고 하더라. 사실 이번에 내가 이제 갈 때가 되었구나 싶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어차피 인명은 재천이고 아등바등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서 전화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엄마. 많이 걱정했어요.”
"곧 내 생일도 있으니 밥이나 한 번 먹자. 그때 가방을 좀 가져와라. 내가 그날 줄게 있다."
생신 겸 건강을 되찾은 기념으로 엄마와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집에 들러 잠시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여전히 공부하고 글을 쓰시는 엄마와 오랜만에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덧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엄마, 이게 뭐예요?”
“영정사진이다. 이번에 아프고 나서 느낀 게 있다. 나는 이제 언제든 갈 나이가 되었다. 내가 죽으면 어차피 네가 와야 하니 잘 가지고 있어라.”
집에 와서 짐을 정리하는데, 엄마가 건넨 사진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화선지로 곱게 싼 액자 위에는 엄마의 손글씨로 “영정사진”이라고 적혀 있었다. 액자를 손에 들고 가만히 네 글자를 바라보는데, 마음 한구석이 먹먹했다.
엄마는 차분히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셨다. 우리가 언제라도 이별할 수 있다는 걸 아시는 엄마는 남겨질 내가 당황하지 않도록, 당신의 생일날 미리 영정사진을 내게 건넸다. 나도 엄마처럼, 마지막을 그렇게 담담하게 준비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그래, 얼마 전 내가 준 비상금 잘 가지고 있지?"
"네. 잘 가지고 있어요. 다시 드릴게요."
"아니다. 그때 너 주려고 했던 거니 돌려받을 생각은 없다. 하나 생각나서 전화했다. 저번에 보니 네 노트북이 너무 낡았더라. 팀장이고 글도 자주 쓰는데 그런 걸로는 안된다. 그 돈으로 먼저 노트북부터 사라."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구나. 목이 잠겨왔다. 애써 숨을 고르며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수년 전, 달리기를 시작하고 인스타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당근마켓에서 14만 원짜리 중고 노트북을 샀다. 느리긴 해도 글을 쓰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엄마가 이번에 아프면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 엄마가 마련해 준 비상금을 내가 새 노트북을 사는데 쓴다는 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돈은 그냥 깊숙이 넣어두고 언젠가 엄마를 위해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24년 1월 초였다. 출사표를 써서 SNS에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달리다 보니 기록이나 거리 같은 운동 성취를 목표로 적을 때가 많았다. '달리기 말고 나를 더 나아지게 하는 다른 목표는 없을까' 글쓰기를 좋아하니 글과 관련된 목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던 그때, 인스타에서 스토리 하나가 눈에 띄었다.
"무조건 작가 되기 2기 모집합니다. 마지막 한 자리라 곧 마감합니다."
무조건 작가 되기라니. 무슨 1주 만에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인스타 광고인가?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글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꽂혔다. 다시 보니 글을 올린 분이 평소 내가 좋아하던 A작가님이었다.
2021년 우연한 댓글 하나로 A작가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작가님의 블로그 글 '비난은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지어낸다.'를 읽고 깊은 위로를 받았다. 인간관계로 마음이 아파 이런저런 글을 찾아 읽다가 우연히 그 글을 만났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지어낸다.' 그 문장에 마음이 멈췄다. 그때 비난을 멈추고 잠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작가님. 오늘 저는 누군가와의 거리가 참 멀게 느껴져요. 비수 같은 카톡을 주고받고 하루 종일 마음이 무겁네요. 서로의 존재에 서로가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주고받는 느낌이에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떻게 해야 할지도 이제는 모르겠어요. 때로는 제가 ‘상처 주기 전문가’가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투다 보면 화가 나서 독한 말을 내뱉고 후회하는 일이 반복돼요. 오늘 작가님 글을 읽다 문득 제 안의 슬픔을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닉네임을 ‘당신 내면의 슬픔과 고통을 봅니다’로 바꿨어요. 부끄럽지만 용기 내서 씁니다. 좋은 글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다시 힘을 내볼게요.”
A작가님의 글에 비밀댓글로 나의 아픈 이야기와 힘든 감정에 대해 고해성사하듯 적었다. 나와 아무 인연이 없는 그에게 지금 내 감정을 다 털어놓으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부끄러움을 무릅쓴 내 댓글에 작가님의 답글이 달렸다.
"선생님, '다시 힘을 낼게요.'라는 마지막 문장이 제 마음을 울리네요.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저에게 털어놓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워지셨기를 바라요. 마음에 깃든 슬픔과 고통을 바라본다는 표현 하나만으로도 진심이 전해집니다. 승우님, 마음이 너무 힘들 땐 언제든 저에게라도 답글을 주세요. 제가 큰 도움은 못 드리겠지만, 이렇게 말씀드릴 수는 있을 거예요. “괜찮아요. 세상에 괜찮지 않은 일은 없어요.” 그 말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뒤로 마음이 아플 때마다 A작가님 블로그를 찾았다. 묘하게 그분 글은 내 마음을 토닥여주는 느낌을 받았다. 달리는 재미에 빠져서 블로그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완전히 인스타그램에서만 글을 쓰면서 발걸음이 뜸해졌다. 하지만 그날 작가님이 내게 댓글로 전한 격려와 응원은 영원한 카타르시스처럼 내 기억에 깊이 새겨졌다.
3년이 흘렀다. ‘무조건 작가 되기’라는 문구가 나를 끌어당겼다. 믿을 수 있는 작가님이 이끄는 길, 어쩌면 엄마가 건넨 그 봉투의 의미가 이곳에 닿아 있는지도 몰랐다. 엄마의 봉투 속 200만 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내 삶을 다시 쓰게 만든 첫 용기였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DM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