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브런치를 넘어선다

by 러너인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책 쓰기 프로젝트 궁금해요."

"승우님. 반가워요. 비용은 00만 원이에요. 출간 계약금이 보통 100만 원 선이라 감안해서 책정했어요. 어차피 될 때까지 함께할 예정이라 결국 받으실 금액이라 생각하면 돼요."

"일정은 어떻게 될까요?"

"대략적인 커리큘럼은 일단 6주는 줌으로 의를 진행해요. 그 기간 동안 제 가이드에 따라 강의를 듣고 각자의 주제와 분야, 목차 등을 구성하는데 매번 피드백은 제가 1대 1로 직접 드릴 거예요. 샘플원고 작성 후에 본격적으로, 개인차가 있겠지만 아마도 6주 차 이후 투고를 진행할 거예요. 그전에 기획서작성도 함께 할 예정이에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수업료가 필요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적은 금액. 하지만 내겐 버거운 돈이었다. 평소 월급에서 최소한의 용돈만 남기고 모두 생활비로 보냈다. 돈으로는 수업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쉬웠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책을 쓸 용기를 낼 수 있을까. 평소 존경하던 작가님의 리딩으로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무조건 작가 되기' 프로젝트. 돈 때문에 이번에 함께하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어쩌지? 대출이라도 받아야 하나?'

마지막 남은 한 자리였다. 블로그에서는 이미 대부분 모집이 끝났고 최소 인원을 채우기 위해 작가님이 빠른 마감을 위해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신 상황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그때 머릿속에 돈봉투 하나가 스쳤다.

'아, 그 돈!'

얼마 전 엄마가 아파 병원에 가셨을 때 내 손에 꼭 쥐어주셨던 200만 원.

“네 꿈을 위해 써라.”

글쓰기에 필요한 노트북부터 사라고 하시며 내게 건네셨던 그 돈이었다. 그 귀한 마음이 담긴 돈을 어떻게 노트북 따위에 쓸 수 있을까 싶어 계속 보관하기로 했던 소중한 돈. 혹시 이 돈이 꼭 필요한 때가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엄마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곳에 쓰라고 하셨잖아?


용기가 생겼다. 작가님이 빈 말을 하시진 않을 테니. ‘무조건 작가가 될 때까지 도와드리겠다’는 그 한마디를 믿고 가기로 했다. 이번 기회를 살려 어떻게든 책을 내고,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현실의 제약 앞에서 포기할 뻔했지만, 결국 나는 드림 펀드, 엄마의 비상금 봉투에 손을 대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인스타에 짧은 글만 써왔을 뿐, 한 번도 '책을 쓴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 적은 없었다. 겁이 났다. 괜히 도전했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소중한 엄마의 돈만 날리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정말 해도 될까? 내가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결국 작가님께 다시 dm을 보냈다.

"감사해요. 그런데... 제가 잘 해낼 수 있을까요?" 나는 속으로 작가님이 따뜻한 격려 한 마디로 나를 끌어주길 기대했다.

"그럼요, 승우님. 저랑 같이 하면 반드시 출간작가가 되실 거예요."

그 한 마디만 해주시면 못 이기는 척하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DM창은 고요했다. 작가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내 답을 기다리고 계셨다. 몇 분의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나는 늘 우유부단했다. 살면서 확신을 가지고 결정한 적이 거의 없었다. 누군가 좋다고 하면 따라 하고 사람들이 하는 대로 흘러가듯 살아왔다. 그 순간 내 마음에게 물었다. "승우야. 너 진짜 책 쓰는 게 꿈이니? 왜 작가가 되고 싶니?" 나는 대답했다. "응. 그건 사실 1993년 대학교 새내기 때부터 품어온 꿈이야. 이야기는 31년 전 종로의 한 학원에서 시작해."


31년 전인 1993년,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중국어학원에 다녔다. 그날은 서로의 꿈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내 차례가 되자 잠시설이다가 말했다.

"전... 언젠가 책을 쓰고 싶어요."

원어민 강사가 웃으며 물었다.

"책? 무슨 책을 쓰고 싶나요?"

나는 수줍게 대답했다.

"인생... 인생에 대해서요."

어린놈이 무슨 인생타령이냐는 듯 강의실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몹시 진지했다.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반드시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엄마가 아파서 내게 건넨 돈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입술을 꼭 깨물었다. 작가님께 그런 내 마음을 전했다.

"작가님! 신청 가능하다면, 저도 함께 하고 싶어요. 기회를 주신 다면,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을 따라서 용기 내볼게요. 이번이 아니면 다시 마음 내긴 어려울 것 같아요. 힘내서 해보겠습니다!"

작가님이 그제야 따뜻한 응원을 보냈다.

"승우님, 믿고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저도 반드시 꼭 꿈을 이루실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할게요.”


엄마의 드림펀드에서 수업료를 냈다. 그 돈에는 단순한 금액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다음 날, 인스타그램에 출사표를 올렸다. 아직 아무 원고도 없고 투고 방법도 모르는 열정뿐인 예비 작가 주제에 겁도 없이 이렇게 썼다.

<나는 오늘부터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출사표 내용은 이랬다.

"새해 첫 출근 후 무심코 인별 피드 글에 눈길이 멈췄다. '무조건 작가 되기 프로젝트'. 가슴이 떨렸다. 블로그에 진심일 때 접한 그분의 글에 감동받고 조용히 눈물 흘린 시간들이 많았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주는 위로를 진실하게 전해주시던 평소 존경해 왔던 작가님이었다.

2024년을 시작하며 조금 더 꿈에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매번 글을 쓰면서도 항상 내가 글을 써도 되는 사람인지. 언젠가 책을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아무나 글을 쓰지 못하는 브런치란 곳이 있다. 글 세 편과 자기소개, 향후 계획을 내면 심사해서 브런치에 글을 쓸 자격(작가 인증)을 주는 글쟁이들의 꿈의 무대이다. 몇 년 전 자신 있게 도전했다가 떨어졌다. 진지하게 준비해서 다시 신청했지만 또 떨어졌다. 두 번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자신감이 떨어졌다. 브런치를 맛볼 기회는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문제가 무엇인지, 이유도 설명도 없는 거절에 마음이 닫혔다. 브런치 작가되는 쉬운 방법을 알려주는 유료강좌도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그곳에 꼭 가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브런치는 글 쓰는 나에게 아픔으로 남았다.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달리기를 시작하며 인스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가 글쟁이들의 마라톤이라면, 인스타 운동계정은 트레일러닝처럼 중간에 쉬어가며 글을 쓸 수 있었다. 인스타 피드 글은 분량 제한으로 항상 글을 집중해서 긴장감 있게 써야 했다. 러너들은 솔직하고 순수한 편이다. 긴 글을 선호하지 않는 인스타라는 매체가 오히려 나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내 기준엔 짧은 글도 '긴 글주의'라는 제목과 함께 미리 사과부터 하는 이곳에서 나는 매번 글자 수 제한까지 꽉 채워서 글을 썼다. 운동을 가장한 글쓰기 공간. 이곳은 숨겨진 나만의 브런치 장소였다. 처음에는 좋은 글귀를 따라 쓰다 점차 나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달리며 느낀 생각. 대회 이야기. 인간관계와 아픔에 대해. 절제의 노력 등 일상의 이야기들까지. 3인칭이었던 글들은 점점 1인칭 시점으로 부끄러울 수 있는 내면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애써 결점을 숨기고 자신의 가장 빛나는 부분만 더욱 강조해서 보이려는 이곳 인스타에서 나는 약점을 드러내고, 아픈 이야기를 꺼내 쓰곤 했다. 숨어서 나를 쓰려고 했지만, 결국 숨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며 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많아졌다. 따뜻한 응원에 감사했다. 브런치에서 다친 마음이 인별에서 치유되고, 글을 통해 좋은 분들을 만나 마음을 나눌 수 있어 기뻤다.


글 쓰는 사람들은 꿈이 있다. 러너들이 마라톤 서브 쓰리(세 시간 이내에 42km 마라톤 완주하기)를 꿈꾸듯,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은 꿈이다. 브런치라는 매체는 그 욕망을 잘 읽어낸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선물하며 손짓한다. 못 먹은 브런치가 못내 아쉬웠을까. 인별 글쓰기에 감사하면서도 나는 아직 배가 고팠다. 가슴속 한편에 남은 꿈을 바쁜 일상에 감춰두며 살았다. 중요한 순간에 찾아온 작가님의 '무조건 작가 되기 프로젝트'. 아껴둔 첫사랑을 만난 듯 가슴이 떨렸다. 꼭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네가 뭐라고. 브런치도 안 되는 주제에...'라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함께 하겠다고 작가님께 dm을 보내고 신청을 마친 후 1시간 만에 모집은 마감되었다. 편안함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나를 데려가기로 했다. 나약해지지 않도록 나를 글쟁이로 다시 살게 해 준 이곳 인스타(인별)에 새롭게 출사표를 던졌다.


'2024년 1월 3일, 나는 오늘부터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오늘 이 글이 글 쓰는 사람으로서 새해를 여는 나의 출사표이다. 어제 러너로서 쓴 '일상을 대회처럼, 삶을 러닝처럼' 출사표에 더하여 오늘 나는 브런치를 넘고 두려움을 넘어선다. 존경하는 작가님을 따라 새롭게 나를 쓴다.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첫 마음을 잊지 않도록 서로를 깊이 아끼는 인친님들께 용기 내어 고백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책을 못 내고 망신으로 끝나든 제대로 투고해서 책을 내든 이제 달릴 일만 남았다. 브런치를 잠시 내려놓고 오직 '무조건 작가 되기' 프로젝트만 생각하고 달리기로 했다. 작가로 향하는 길 위에 작지만 단단한 등불 하나가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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