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인생에서 가장 꽃다운 시기를 화양연화라 부른다. 나의 10대는 볼 빨간 사춘기의 '나의 사춘기에게'라는 노래와 잘 어울린다. 그다음 이야기는 어떨까?
'나의 20대에게(1994~2003)'
93년에 대학생이 되고 94~96년 군대에 다녀와서 춘천과 서울, 문과와 이과 2개 대학을 졸업했던 나를 떠올린다. 몸에 담배 2갑을 지니고 다녔다. 뒤늦게 배운 담배에 깊이 빠졌다. 난생처음 자취, 하숙생활. 자기 관리가 되지 않을 때 인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몸으로 실험했던 시간들. 수업에 들어가는 날보다 안 들어가는 날이 많았고 시험날 자다가 택시 타고 들어갔지만 결국 F학점으로 끝난 기억도.
누군가를 짝사랑하다 비 맞으며 방황하기도 했다. 수학을 피해 부모님 말씀을 듣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온 중국어학과. 나이 먹고 학문이 아닌 밥 먹었냐 날씨가 어때요?를 회화라고 주 몇 회씩 하는 전공수업에 흥미가 떨어졌다. 모범생에서 부적응자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건강이 무너지고 학점은 사라졌다. 끌려가듯 들어간 군대생활은 힘들었고 인간의 쓴맛을 원 없이 배웠다.
여기서 끝나면 20대가 가장 최악의 시간이다. 마지막에 1년간 화양연화가 있었다. 변변찮은 연애도 못했다가 갑자기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먼 중국 땅에서 만났다. 검붉은 후드를 입고 다니던 소심한 샌님 같았던 나를 남몰래 좋아해 준 사람. 나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사람과의 사귐이 어떤 사건인지 처음으로 배울 수 있었다. 결국 나도 별다를 게 없는 남자란 걸 그 만남으로 알았다. 사랑하는 남녀가 1년간 서로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와 헤어졌다.
나중에 그녀가 내게 먼저 이별을 통보했지만, 그건 내가 더 이상 자신을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느껴서, 서로 떨어져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났을 때도 지금처럼 서로를 사랑할 수 있으면 그게 진짜 인연이 아닐까 하는 순진한 이별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그녀가 다시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차갑게 뿌리친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믿는다. 거절하더라도 그 마음까지 다치게 하진 않았어야 했다고.
아마 내 삶에서 그처럼 아무런 계산 없이 나라는 존재 자체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순수하게 나란 존재를 좋아해 준 그 사람과 어린아이처럼 함께 생각과 경험을 나누던 그 시간들이 어쩌면 내게 사랑의 화양연화가 아니었을까. 나는 언제나 그가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라고 바란다. 한평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없이 결혼하고 살아갈 나를 어여쁘게 여겨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이었음에 감사한다.
'나의 30대에게(2004~2013)'
본격적으로 회사생활을 하고 돈을 벌게 된 시기. 첫 번째 회사에서 3년 일하고 지금 있는 곳으로 옳겼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미혼에서 기혼으로, 커플에서 가족으로 삶이 확장된 시기다. 분당에서 용인으로, 작은 집에서 조금 넓은 집으로. 625 동란을 방불케 하는 급변하는 직장 상황 속에서 나는 사랑받는 선후배에서 혼자 밥먹는 외톨이가 되었다.
두 아이와 함께 주말마다 어디론가 다니며 아이들과 붙어있었다. 아빠라는 역할이 생기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생겼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고 싶어서 애썼던 시기랄까. 하지만 좋고 나쁜 건 누가 알까. 나이가 들어 대학에 가고, 대학에 나와 직장에 가고, 직장을 다니다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애를 낳고 아빠가 된다. 마치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시간이 흐르고 흘러가듯 지낸 시간. 점점 번아웃이 시작되던 시기.
누군가 30대에 화양연화는 한순간도 없었나요?라고 묻는다면... 두 아이와 같이 서울대공원에 다니며 신기한 듯 동물을 구경하고, 집에 오는 길에 칼국수집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고 싶어 조심스럽게 아이엄마에게 문자를 보내어 허락을 받고 행복하게 면발을 후루룩 들이키던 순간들, 아이들과 체험학습 다니던 그 시간들이 화양연화였다고. 아무 때나 사진을 찍어주고 딸들을 스스럼없이 꼭 안아줄 수 있었던 그 순간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화양연화였음을 지금 시린 가슴으로 어루만진다.
'나의 40대에게(2014~2023)'
회사생활은 30대보단 상대적으로 나아졌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전보단 안정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야근을 밥먹듯이 했고 야식과 오래 앉아있어서 건강이 안좋아졌다. 중년의 부푼 몸으로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 풍선에 공기가 빠지듯 나라는 사람이 쭈그러들었다. 팀장으로 일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코로나라는 희대의 전염병과 거리 두기의 시대를 만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와 거리 두게 되고, 언제부턴가는 나 자신과도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외롭고 힘들어지니 모든 면에서 벽에 부딪혔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삼재를 만난 듯 숨 쉴 수 없었다. 관계의 벽, 사람의 벽에 갇힌 듯했다. 마치 내 삶의 숨구멍에 마스크를 씌운 듯. 그것도 KF 94 마스크를. 나는 내가 싫어졌다. 이런 정도의 삶밖에 살지 못하는,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내가 미워졌다. 몸과 마음 모든 곳이 무너지고 있었지만 뭐가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내 삶의 주도권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아주 작은 결정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 없었고,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닌 살아지는, 완벽하게 끌려가는 삶이라고 느꼈다.
누군가 40대에 화양연화는 한순간도 없었나요?라고 묻는다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가을, 달리기를 시작했다. 평생 처음으로 하는 운동. 아니 운동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정신과 치료를 받는 심정으로 새벽에 운동화를 신었다. 막상 뛰어보니 정신과가 맞았다. 그는 땀으로 오디오북으로 확언으로 매일 늘어가는 거리와 빨라지는 속도로 나를 치료해 주었다.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모르고 죽었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었다. 조금 더 달리기에 미친 날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달리기를 만났으니. 이런 생각까지 하며 달렸다. 이게 화양연화가 아닐까? SNS를 시작한 용기와 꾸준히 글쓰는 습관을 기른 시기도 이때다. 아, 100km 울트라마라톤을 달린 것도 이 때다.
'나의 50대에게(2024~현재)'
50대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도약의 시기다. 50세가 되던 24년 새해에 작가가 되기로 출사표를 올렸다. 그해 봄 정말로 출간계약을 맺고 25년 봄 달리기 에세이 책을 출간했다. 책 한 권 달랑 내고 끝난 게 아니라 오디오북 제작에 도전해서 결국 9월에 오디오북을 출간하고 내가 40대에 숨어 지내던 도서관에 나를 휴먼북으로 등록하고 특강 계획을 잡았다.
달리기 실력은 조금씩 느려지고 있지만 도전의 폭과 깊이는 계속 늘고 있다. 전에는 달리기라는 도구로만 나를 성장시켰다면, 달리기가 준 용기로 내 삶에 주어지는 모든 기회와 도전에 몸을 던지고 있다. 내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어디까지 향하는지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다. 회사에서도 새로운 일로 부서를 옮기게 되고, 책을 쓰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도 조금씩 늘어난다.
누군가 지금 50대에 화양연화는 한순간도 없었나요?라고 묻는다면... 가끔씩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는 하지만 지금 모든 순간이 그런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이전의 나는 50에 책을 쓸 거라곤, 그것도 운동을 싫어하던 내가 달리기 책을 쓸 거라곤, 공개적으로 sns에 글을 쓸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화양연화는 어느 시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꽃처럼 살겠다고 마음먹는 상태다.
P.S. 뮤지션 요조님이 낭독해주신 오디오북이 오늘 출시되었습니다. 먼저 교보랑 예스24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