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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사람에게 닿을 때

by 러너인

내가 직접 주문한 내 책이 어젯밤 도착했다.
부서 일을 도와주는 학생에게 선물할 생각에 설렜다. 요즘은 회사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면
강의 발표자료를 만드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피로가 쌓이고, 체력은 바닥나고, 눈은 따갑다.

그래도 이것이 소중한 기회라는 걸 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테니까.

침대에 누워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 1시에 다시 일어났다. PC를 켜고 지난 5년의 도전과 달리기를 돌아보며 한 페이지씩 발표자료를 만들었다. 어느새 40페이지가 넘었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잠깐이라도 자야 출근을 할 수 있다.

원래는 밤에 편지를 써서 출근하면 건네주려 했지만, 편지를 못 쓴 채 책과 사인펜만 가방에 챙겼다. 결국 점심시간을 이용해 조용히 편지를 적었다.
“OO학생에게. 안녕하세요. 정승우예요.
스치듯 말한 제 책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고
따스한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5년 전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저는 책을 쓰게 될 거라거나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사람들은 보통 살을 빼기 위해 뛰지만
그때의 저는 번아웃 때문에 ‘살기 위해’ 달렸어요.
정신적 고통이 달리는 고통보다 더 커졌을 때
비로소 러너가 된 것 같아요.

달린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아요.
그저 달리는 나 자신이 새로워질 뿐이죠.

OO학생도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달리는
멋진 러너가 되길 바라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러너인 작가 정승우 드림."

오후에 일하다 잠시 학생을 불렀다.
"OO학생, 제 쪽에 잠시만 와주실래요?
"네, 팀장님~"
“저번에 책 달라고 했었죠? 그땐 저도 제 책을 안 가지고 있어서 학교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다고 했어요. 감사한 마음에 제가 제 책 주문했어요. 제가 썼어도 돈 내고 사야 해서요.”
"전 팀장님이 쓰셨으니 가지고 계신 줄 알았어요."
"정말 읽고 싶어서 말한 걸 아니까 꼭 선물하고 싶었어요.”
"감사해요. 팀장님."
"앞쪽에 학생에게 쓴 편지도 있으니 나중에 읽어봐요. 우리 아쉬우니까 책 증정 기념사진 하나 찍을까요?"

일하다 보니 저녁 6시. 퇴근시간이다.
학생이 일어나면서 인사를 하고 나가려다
쭈삣대며 내 자리 쪽으로 돌아왔다.

“팀장님! 책 정말 감사해요. 잘 읽을게요. 고맙습니다.”
나도 순간 뭉클했다.
"제 책을 마음으로 읽어줘서 제가 더 고마워요. 응원할게요.”

따뜻해졌다.

발표자료 만드느라 지친 몸과 마음에도 온기가 맴돌았다. 평소 조용한 친구가 진심으로 좋아해 주니 괜히 마음이 찡했다. 그 학생이 자신만의 달리기를 찾아 자유롭게 달리고, 자신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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