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달렸으면 너 정말 어쩔 뻔했냐?"
갑작스러운 엄마의 말에 미소 지었다. 그랬다. 4년 전 그날, 내가 달리지 않았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 내 인생에 겨울이 다가온 그때, 나는 집과 회사를 오가며 영혼 없는 껍데기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문득 보고 있던 어느 유튜브 영상 끝부분에 올라온 자막에 눈이 멈췄다.
“오랜만에 영상을 올립니다. 예기치 않은 공백기를 가졌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순간을 마주합니다. 저도 크고 작은 어려움을 넘기며 살아왔지만, 이번엔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빛줄기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의 굴에 떨어진 듯했어요.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계단을 발견했습니다. 그 계단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믿음으로 한 걸음씩 올라가다 보니 반년이 흘렀습니다.
아직 세상으로 통하는 문은 보이지 않지만, 뒤를 돌아보면 어둠의 굴은 보이지 않을 만큼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앞에서 희미하게나마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유튜버로서의 활동은 여기까지지만, 이 채널에 애정을 쏟을 수 있었던 지난 시간은 제게도 큰 위안이었습니다. 부족한 채널임에도 함께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상 내용이 좋아서 보고 있다가 먹먹해졌다. 그는 어둠 속에 있었다. 감당하기 버겁고 힘든 일.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둠의 굴. 40세의 나이.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삶.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찾을 수 없다던 그는 지금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4년 전 나는 지금의 그에 비하면 더 나았을까? 자존감이 사라진 버티는 삶. 인간으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랑과 소속감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메마른 삶.
아마 그때 내게 주어진 선택은 “이대로 죽을래? 나가서 달릴래?”가 아니었을까. 그때 난 달리기를 선택했다.
댓글로 그분을 응원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이 ‘내 인생은 도미노처럼 다 쓰러졌다.’라고 한탄하는 글을 남겼는데, 거기에 누군가가 ‘위에서 보면, 멋진 그림이지 않을까요’라며 댓글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 짧은 한 줄에 담긴 따뜻한 위로가 글쓴이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요. 어찌 보면 쓰러진 도미노 인생이지만, 위에서 보면 작품 같은 우리의 도미노는 지금 어떤 모양을 그리고 있을까요.
각자의 속도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만드는 도미노 같은 우리의 삶.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며 그리는 아름다운 그림.
완벽하지 않아서 어쩌면 더 아름다운 우리의 인생. 쓰러지면서도 서로를 이어가는 도미노처럼, 우리의 삶도 결국 서로가 연결되며 하나의 작품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요.
“어둠은 빛을 파괴하지 못한다. 오히려 빛을 더 또렷하게 보일 뿐이다.”라는 말로 티끌 같은 위로를 전합니다. 응원합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댓글을 남겼다.
”쓰러진 도미노가 위에서 보면 멋진 그림처럼 보인다는 글은 완벽한 전화위복이네요. 남겨주신 댓글을 읽고 또 읽고 계속 읽게 됩니다. 덕분에 큰 힘이 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
연휴인 오늘 아침 바나나 런클럽 화요일 정기 훈련이 있었다.
폭설에도 훈련장으로 데려다준 고마운 민원님, 휴일에도 클래스를 열어주신 연진 코치님, 서윤 코치님, 매니저님, 희준 님. 이런 날 훈련에 누가 나올까 싶어도 눈을 헤치고 나타나는 뜨거운 바나나 러너 분들.
나는 그들이 좋다. 그들과 함께 있는 내가 좋다.
내가 이런 멋진 분들과 함께 달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벅차다.
펑펑 내리는 눈을 피해 코치님과 바나나 러너들과 함께 80분간 달리고 눈밭에서 작은 눈사람을 만들고 사진을 찍었다. 내리는 눈에 손발이 시려도 좋았다.
사랑과 소속감.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함께 존재하는 소중한 이 순간.
어둠은 결코 빛을 파괴하지 못한다.
오히려 빛을 더 또렷하게 보일 뿐이다.
차가운 눈보라 속에서도 서로 호흡을 맞추며 웃고 달리는 지금의 시간은 2020년 그날의 나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따뜻한 기적이 아닐까. 어쩌면 그때의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보이던 계단이 바로 지금 이런 순간들을 향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2020년 9월의 나에게 묻는다.
“그때 안 달렸으면 너 정말 어쩔뻔했냐.”
2022년 5월의 나에게 또 묻는다.
“그때 바나나에 안 갔으면 너 정말 어쩔뻔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