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8일. 북서울미술관 북멘토 특강 세 번째 시간. '공감도 연습할 수 있다'는 권수영 교수님 강연을 들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바로 직전 정호승 시인님 강의 주제는 사랑과 용서. 가족 간의 사랑. 가까운 이에게 사랑받는 게 최고로 성공한 삶이라는 말씀.
지극히 맞는 말이고 예전 같으면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사실 지금 내겐 아픈 이야기다. 첫 번째 멘토님 강의 때, 14년간 힘든 방송생활을 버티게 해 준 힘이 '가족'이라는 말씀에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앞선 강사님들께 묻고 싶었다. 모든 상황이 이상적이지 않다면, "그런 힘든 순간에 가족이 버티게 해 줄 힘이 되지 못한다면, 무엇이 나를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티게 해 줄 이유가 될까요?"
그 질문이 중년의 나를 무작정 달리게 한 이유였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울고 싶어도, 두렵다고 이야기할 곳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뼛속까지 느꼈을 때, 달리기와 글쓰기, 책 쓰기가 유일한 집이고 호흡이었다.
사랑하기 싫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행복하고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타인의 삶이 사랑을 모르는 삶이라는 것엔 동의하긴 어렵다. 그건 내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한 여정을 부정하라는 말과 같으니까.
5년 전 달리기를 시작한 내게 주어진 질문은 그분들과 달랐다. 지구별에서 내게 주어진 숙제는 아까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가족조차 네가 버티며 살아낼 이유가 되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하는 외부세계와 같은 무게로 다가온다면...'
내가 살아낼 힘과 용기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울지 않으려 했다. 기획부서 팀장이니까. 남자니까. 아빠니깐. 울면 루저이고 지는 거라 믿었다. 가끔 출퇴근 버스에서 압력밥솥에서 쪄지고 있는 무언가가 된 기분에 남몰래 눈물지을 때도 있었다.
아픈 마음에 나름 친하다고 여겼던 동료에게 상황을 전했다가 상처를 받았다. 그는 툭 내뱉듯 말했다. "왜 그렇게 살아?" 나는 입을 닫았다. 다시는 회사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질문은 약해지는 순간마다 망령처럼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왜 그렇게 살아?"
마흔여섯에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라도 믿고 살아보기로 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보면 나를 위로하듯 댓글을 달았다. 나는 댓글로 나를 안아주었다. 그렇게(?) 사는 삶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나를 작게 만들던 자책감과 차갑게 식은 심장에서 조금씩 빠져나왔다. 그러다 사람들과 땀 흘리며 함께 달리며 조금씩 웃음을 찾았다. 풀코스를 뛰고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하는 러너가 되었다.
권수영 교수님 강의는 달랐다. 어떤 관계는 가족보다 깊을 수 있다고 위로를 던졌다. 진정 위로를 나눌 관계. 유학 중에 지도교수님과의 일화. 세계적인 석학이던 지도교수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리기 전날 밤 자신을 불러서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정말 친한 친구가 교수님께 한 말. 세 번째 결혼이 몇 년 갈 확률은 5% 정도라는.
상처받은 교수가 학생이던 자신에게 내담자라고 생각하고 상담을 해달라는 상황. 교수는 자기 인생이 실패했다고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번에도 몇 년 만에 헤어지면 삶을 스스로 끝내겠다고. 권교수님은 교수님을 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이 한참을 울었다.
교수님은 그날 이후 아들뻘인 자신을 친구라고 부르고 평생을 서로를 아끼며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 공감은 연습할 수 있다는 말. 아직도 울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세요?라는 그분의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문득 따뜻한 체온이 그리웠다.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 그냥 사람내음. 숨 쉬는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다.
강의가 끝났다. "멘토님과 사진 찍으실 분들은 입구 쪽에서 기다려주세요." '에이. 부끄럽게 사진은 무슨 사진이야.' 하며 생각하다 입구에 나와보니 몇 분이 사진을 찍고 있다.
따뜻한 권수영 교수님 강연에 큰 위로를 받았다. 앞의 강연이 마치 네 삶은 비정상이고 사랑 없는 실패한 삶을 살고 있다고 꾸짖는 듯 다가왔다면, 권교수님의 강연은 너 삶도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는 응원으로 다가왔다. 홀린 듯 사진 줄 뒤에 섰다. 곧 내 차례가 돌아왔다. 생각지 않은 말이 불쑥 입에서 튀어나왔다.
"교수님. 잠시 좀 안아도 될까요. 체온을 느끼고 싶어요."
따뜻한 체온과 함께 교수님의 환한 웃음을 느꼈다. 36.5도의 온기와 부드럽고 푸근한 사람의 감촉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순간 가슴이 따뜻해졌다. 깊은 곳에서 자꾸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울지 않으려 얼굴에 힘주며 겨우 참으며 사진을 찍었다.
미술관을 나와 조용히 한참을 걸었다. 진짜 살아있는 사람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 용기를 냈다. 오늘 내게 진짜 필요했던 건 누군가의 환한 웃음과 살아있는 체온, 눈물 한 방울이었으니까.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땀은 피보다 진하다.
P.S. 모든 (중년의) 달리기에는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