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씻어낸 한 모금
멀지 않은 곳에서 떠밀려 온 비릿한 바다 내음과 내 땀방울이 끈적하게 뒤섞인다. 공기 속에도 유쾌하지 않은 소금기와 열기가 함께 달라붙어 있었다.
모래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뒤로, 드디어 멀리 푸르른 지평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계획대로라면 멋진 풍경 앞에 당당히 서서 눈싸움 한판쯤은 벌여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럴 정신도, 체력도 이미 바닥을 드러낸 뒤였다. 어떻게든 태양을 피하고 싶었다. 도망쳐야만 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찬 공기가 온몸을 덮쳤다. 돌아오지 않는 숨을 진정시키며 커피를 주문했다.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막처럼 말라버린 몸을 촉촉하게 적셔줄 무언가면 그것으로 족했다.
"Ice Americano for Won!“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이리도 반가울 줄이야, 옅은 미소와 함께 건네받은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손끝을 적신다. 아메리카노를 벌컥 한 모금 넘겼다. 쌉싸름함 뒤에 찾아오는 얼음같이 차가운 달콤함이 머릿속까지 찌릿하게 파고든다. 이내 빈자리를 찾아 의자에 등을 기댔다. 거칠게 날뛰던 숨은 차츰 고요해지고, 흐르던 땀방울과 심장 박동은 잦아들었다. 비로소 살았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연거푸 커피를 마시고는 그제야 푸테리 하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박한 요트, 웃고 있는 사람들, 물결에 반사되어 부서지는 빛. 모든 것이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조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태양과 온몸을 옥죄던 고통은 그 풍경 앞에서 자리를 잃었다.
영원한 고통은 없듯, 달리기 역시 그렇다. 달릴 때에는 매섭게 달려들던 고통도 멈추는 순간 잦아든다. 대회에서도, 훈련에서도 마찬가지다. 달릴 때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멈춘 뒤에는 어김없이 같은 생각에 도달한다.
'조금 더 빨리, 더 멀리 달릴 수 있었는데.‘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후회는 아니다. 그 고통을 충분히 뒤로 밀어내지 못한 것뿐이다.
목표나 목적을 이루는 과정은 우리 모두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도전을 반복하다 보면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 경험은 다음을 준비할 힘이 되고, 결국 목표로 가는 과정이 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넘어진 사실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날의 무모한 달리기는 커피 한 잔과 푸테리 하버의 풍경과 함께 조용히 정리되었다. 아무런 바람 없이, 문을 박차고 나왔을 뿐인데 또 작은 배움을 얻었다. 그렇게 나는 달리기를 통해 한 걸음 성장했다.
운동 후 마시는 모든 커피는 맛있지만,
이날의 아이스커피는 특히 더 그랬다.
Runner's Tip
푸테리 하버는 달린 뒤 여유롭게 머물고 싶은 공간이다. 멋진 야경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과 펍이 해안선을 따라 줄지어 있다. 비가 내리지 않는 주말이면 활기찬 야시장이 열리니 꼭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운동 후 가벼운 핑거 푸드와 맥주를 즐기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보자. 특히 해피아워에 방문하면 2+1, 3+2 등의 프로모션을 통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여럿이 함께 나눠 마실 수 있으며, 다 마시지 못 한 맥주는 영수증(쿠폰)으로 돌려받아 다음 방문 때 사용할 수 있는 독특한 시스템이 있다. 음식도 맛있어 식사를 겸하기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