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의 다정한 인사

'습, 습. 후, 후.'

by 지음

월요일 오후 8시.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도시, 비는 그쳤다. 공기는 아직 습했고, 아스팔트 위에는 낮의 열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어느 도시를 가든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모여 달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틈에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자신의 땀방울을 새겨 넣는 도시의 주인들이다.


그들과 함께 낯선 도시의 혈관 위에 땀방울로 비릿해진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면, 이방인의 여행은 더욱 풍성해진다. 관광객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며, 느낄 수 없는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조호바루도 예외는 아니다. 숙소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 불과 3분 거리에 위치한 운동장의 주차장이 매주 월요일이면 현지 러닝 크루의 출발선이자 아지트였다. 참여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신발 끈을 묶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금 일찍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듬성듬성 모여 있는 무리를 향해 쭈뼛거리며 다가서자 크루장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에 응답하듯 수줍은 인사를 건넸다. 함께 달릴 사람들과도 이름을 묻고 어디서 왔는지 가볍게 안부를 물었다. 아빠를 따라 나온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도 보였다. 문득, 이미 꿈나라에서 즐겁게 놀고 있을 딸아이도 함께 나왔으면 (나만) 좋겠다는 욕심이 스쳤다.


시간이 흐르고, 약속 시간에 이르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 함께 사진을 찍은 뒤 러닝 코스를 공유했다. 운동 전 한낮의 더위로 지치고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 준비운동도 잊지 않았다. 누군가는 종아리를 늘렸고, 누군가는 발목을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 이내, 십수 명의 러너가 주인을 잃은 도로를 점령했다.

코스만 정해졌을 뿐, 속도는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앞서고, 누군가는 뒤에 남았지만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앞사람의 등을 기준으로 삼거나, 뒤를 돌아보며 속도를 조절하지도 않았다. 함께, 또 따로 달리며 각자의 리듬과 호흡에 집중할 뿐이다. 어둠이 내린 도시는 그 속도를 허락하듯 조용히 길을 내주었다.


'습, 습. 후, 후.'


평상시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지만 러닝 중 호흡법은 같았다. 두 번 들이마시고 두 번 내뱉으며 호흡을 고른다. 호흡은 대화가 되고, 몸의 리듬은 응원이 되었다. 들숨엔 서로의 기운을 담아 마시고, 날숨엔 각자의 하루를 실어 보낸다.


거칠어진 숨 사이로 눈인사를 나누고, 고갯짓으로 서로를 응원했다. 10킬로미터를 달리다 보면 자연스레 오늘의 응어리를 털어내고, 내일을 이겨낼 힘이 함께 차오른다. 그렇게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먼저 달리기를 마친 사람들이 모여 큰 원을 만들어 섰다. 삼삼오오 모여 러닝화와 러닝복 이야기부터 부상 이야기, 그리고 살짝 허기진 배를 달랠 숨겨진 현지인 맛집 정보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꽃을 피운다. 또, 누군가는 막 끝난 대회를 웃으며 복기했고, 누군가는 곧 다가올 싱가포르 마라톤 대회를 걱정했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마지막 러너가 도착하면 마무리 운동을 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러닝 인구 천만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온 나에게 러닝 크루는 삶의 일부다. 그래서 여행 중 현지 러닝 크루와 함께 달린다는 건 운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가장 손쉽고 안전하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마을 구석구석을 느끼며, 그들의 삶을 잠시 살아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몰라도 괜찮고, 목적지나 목표가 달라도 상관없다. 어디에서든 같은 리듬으로 한 시간 남짓 달릴 용기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여전히 낯선 곳.

하지만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이 밤이 끝나도, 이 도시를 떠나도,

내 몸 어딘가에 이 도시가 남아 있을 것이다.



Runner's Tip

러닝크루명: @TheRunaway_Co

모임장소: Educity Sports Complex 주차장

일시: 매주 월요일 저녁 8시


중국계 말레이시안 러너를 중심으로 한 자유로운 러닝 커뮤니티다. 거리와 속도에 제약 없이 자유롭게 달리며, 때로는 아트런(러너런)을 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 DM으로 참여 신청이 가능하며, 별도의 참가 비용은 없다. 여행 중 가볍게 현지 러닝 문화를 경험하기에 부담 없다.


해외 여행을 하다 보면 문득 한국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만나는 한식의 경우 가격은 비싸고, 맛은 아쉬운 경우가 많다. 에듀시티 스포츠 콤플렉스 인근에는 가성비 좋은 한식 고깃집 홍대입구가 있다. 2인 세트를 주문하면 3명이 충분히 나눠 먹을 만큼 푸짐하고, 밑반찬과 고기 모두 맛있다. 부담 없는 가격과 편안한 분위기 덕에 만족도가 높다.


러닝 뒤, 익숙한 맛으로 하루를 정리하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 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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