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읽고
독서모임 통해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읽게 되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아낌없이 칭찬하라"와 "상대방의 실수를 지적하지 말라"이었다. 그간 나는 가족과 함께 살면서, 남자친구와 함께 살면서 책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해오고 있었다. 나는 아낌없이 상대방의 실수를 지적했고, 칭찬은 정말 아꼈다.
특히 실수를 지적하지 않는 행동은 정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간 내 행동을 반성하게 되었다. 왜 실수를 지적하면 안 될까? 내 경험상 실수를 지적하는 일은 결국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금은 독립을 했지만 가족들과 살던 때를 떠올리면 잔소리로 인해 피곤함을 느낀 적이 많다. 특히 난 언니의 잔소리에 힘겨워했다. 내가 지적을 당하는 일들은 사소했지만, 불편함을 야기한 행동들이었다. 씻고 나서 수건 걸어놓기, 젖은 변기 닦기, 머리카락 치우기 등.. 내 잘못을 발견한 언니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야 수건 걸어놓으랬잖아", "변기 왜 안 닦아?"
물론 다 내 잘못이었지만 지적을 당하는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행동을 고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반발심이 더 크게 생겨났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소심한 반항은 잔소리 들은 행동 중 언니도 실수하는 것을 찾아내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기회를 노려 트집 잡는 것이다. 결과는? 결국 우리 자매는 눈에 불을 켜고 서로의 잘못을 찾아내는 데에 집중했고, 사이는 그리 좋지 못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니 친구들을 만나면 "언니의 잔소리 때문에 집에 가기가 싫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몇 년 뒤 언니와 나 사이에 평화가 찾아왔다. 언니가 결혼을 위해 형부와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나는 언니의 잔소리에 해방되었지만 이젠 새로운 잔소리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게임에서 한 판 한 판 깬 뒤 만나는 게 무엇이 있을까? 바로 최종보스다. 난 잔소리의 최종보스 엄마를 상대하게 되었다. 언니와 같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내게 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언니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 주었던 것 같다. 이젠 언니가 나가고 엄마와 둘이 있게 되니 엄마는 잔소리를 참지 않고 내게 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너무 많으니 좀 치워", "책상 좀 정리해", "집안일 좀 해". 엄마는 밖에서 있던 답답한 일을 내게 잔소리로 푸는 듯이 참지 않고 나의 모든 행동을 지적해 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치려 노력하지만,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다는 데에 더 감정이 동요되어 짜증내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게 잔소리를 하는 것도 모자라 언니와 통화를 할 때에도 내 흉을 봤다. 언니를 만나게 될 때면 또 "엄마 말 좀 들어라", "치워라" 등 엄마의 잔소리를 이중으로 들어야 했다. 역시 최종보스는 다르구나.
이중 잔소리에 힘겨워진 나는 결국 잔소리 듣는 것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남자친구가 독립을 한 김에 나도 엄마와 함께 살던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와 언니, 나는 서로 잔소리를 할 상황이 없어지면서 평화가 찾아오고 사이도 좋아졌다. 그런데 이제 나는 뜻밖의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그 상대는 바로 나였고, 나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엄마의 모습이 싫어 나온 내가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남자친구에게 엄마처럼 잔소리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물건 제자리에 갖다 놔줘", "이거는 다 쓰고 꼭 치워줘", "들어올 땐 꼭 불을 꺼야지"... 남자친구는 나의 잔소리를 군말 없이 다 들어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도 잔소리를 멈추는 게 아니라 고쳐야 할 것에 대해 더 많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친구에게서 이전의 내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남자친구에게 지적했던 행동 중에서 내가 미처 못한 행동을 남자친구가 지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언니의 잘못을 찾아냈던 것처럼. 어느 순간 나는 좋아하는 남자친구에게 그동안 싫어하던 모습을 하고 있고, 내 잘못이 발견되면 "실수야"라고 인정하지 않는 추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p.29 [Part 1 사람을 움직이는 3가지 원칙 - 꿀을 얻으려면 벌통을 걷어차지 말라]
다른 사람의 결점을 교정해 주려는 마음씨는 분명히 훌륭하고 칭찬받을 만하다. 그렇지만 우선 자신의 결점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기주의적인 생각일는지 모르겠으나, 함부로 다른 사람의 결점을 꼬집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결점을 고치려는 시도가 훨씬 더 유익하며 건전한 방법이 아닐까. '자기 집 현관이 지저분하면서 이웃집 지붕의 눈을 치우지 않았다고 탓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씀을 상기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p.172 [Part 3 좋은 관계를 만드는 대화법 - 상대방의 실수는 지적하지 말라]
인간이란 자신의 어리석음을 지적당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법이다. … 자신의 잘못이 있을 때는 자기 자신이 그것을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말을 부드럽고도 교묘하게 하면 자신이 그 잘못을 솔직히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솔직함과 대범함에 긍지를 느끼는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강제로 밀고 들어온다면 오히려 반발심만 생겨 저항하게 된다.
p.228 [Part 4 상대를 이해시키는 특별한 방법 -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얘기부터 시작하라]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 따위는 결코 하지 않았다.
상대를 위한 답시고 잘못을 지적하는 "잔소리"는 결국 내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그간 잔소리를 하지 않았던 남자친구가 이제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사이는 좋지만,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언니가 함께 살던 집에서 독립을 했던 것처럼, 내가 엄마의 집에서 독립을 했던 것처럼 우리 둘 중 누군가 잠시 떨어져 있어야만 평화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우리의 관계를 위해 나는 잔소리를 멈추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