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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김작가 Jun 07. 2016

「봄날의 곰만큼 좋아」

#32.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 속으로!


'응, 응, 응, 무슨 말이든 좀 해봐.'

'무슨 말?'

'뭐든 좋아. 내가 기분 좋아질 수 있는.'

'너, 정말 귀여워.'

'미도리.' 그녀가 말했다. '이름 붙여서.'

'정말 귀여워, 미도리.'

'정말이라면 얼마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말라버릴 만큼 귀여워.'

미도리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 표현이 정말 참신해.'

'더 멋진 말 해봐.'

'네가 정말로 좋아, 미도리.'

'얼마나 좋아?'

'봄날의 곰만큼 좋아.'

'네가 봄날 들판을 혼자서 걸어가는데, 저편에서 벨벳 같은 털을 가진 눈이 부리부리한 귀여운 새끼 곰이 다가와. 그리고 네게 이렇게 말해. 「 오늘은, 아가씨, 나랑 같이 뒹굴지 않을래요.」 그리고 너랑 새끼 곰은 서로를 끌어안고 토끼풀이 무성한 언덕 비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하루 종일 놀아. 그런 거, 멋지잖아?'





이렇게 재미나고 독특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는 남자가 또 있을까?

<미도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고, 다소 듣기에 버터범벅 느끼할 수 있는 답변을 아무렇지 않게 술술 말하고 있다.

입가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지는 멋들어진 표현이다. 그의 모든 말에 은근 귀가 솔깃해지고,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의 남자 <와타나베>. 미도리는 그런 와타나베를 좋아한다. 매번 좋아한다는 걸 은근 알려주고 살짝 돌려 설명해주어도 못 알아듣는 척, 늘 배짱만 내미는 '배짱이' 와타나베.  나도 그런 그가 몹시 좋아진다.






미도리도 나도 좋아하는 남자, 와타나베!



그는 담담한 무채색 같은 남자.

미도리가 좋아한다고 말을 던져도, 왜 나지? 설마 나를? 하며,  자신의 첫사랑인 <나오코>만을 생각하거나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특별한 미동도 반응도 잘 보이지 않는 답답한 남자다.



유유히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그는 스물 언저리의 외로운 고독정체성 혼돈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가슴에는 자신의 절친이었던 '가즈키'의 자살을 통해,  '죽음'이라는 커다란 화두를 껴안은 체, 혁명을 강요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인지, 진정한 자의 사랑은 누구인지 무엇이 진실한 사랑인지 찾아나가고 있다.





땅을 밟고 서서 걷고 숨 쉬고 고동치는 존재, 미도리!


"인생이란 비스킷 통이라 생각하면 돼. 비스킷 통에 여러 가지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고 거기에 좋아하는 것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게 있잖아? 그래서 좋아하는 걸 자꾸 먹어버리게 되면, 그 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거든. 난 괴로운 일이 생길 때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라고, 나는 경험으로 그걸 배웠거든."



몸과 정신이 허약해져 요양소에 들어가 있는 와타나베의 첫사랑 <나오코>의 상태가 더 안 좋아져서 빠져 있는 <와타나베>에게 미도리는 이렇게 위로다.


비스킷 통이라....   

적절한 비유같기도 하다. 

이래저래 생각해보면, 인생이 늘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건 확실하다.



어쨌 다시 미도리! 


생명력이 넘치는 여 미도리.

순수한 호기심이 가득하며 특유의 발랄함으로 <와타나베>에게 '밝음'을 선사해주는 여자.

똑똑,

그녀는 늘 와타나베의 마음을 두드리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간다.

와타나베는 그런 그녀에게 서서히 이끌들고, 어느 순간 그녀 없는 시간들을 견디기 어워 할 만큼 로움을 느낀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너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탓에 난 정말로 힘든 4월과 5월을 보냈어…… 이렇게 힘들고 외로운 봄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이런 식이라면 2월이 세 번 계속되는 편이 나을 거야.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한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새로운 헤어스타일, 너하고 정말 잘 어울려. 정말 귀여워. 지금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방장한테 맛있는 스파게티를 만드는 법을 배웠어. 언제 네게 만들어 줄게.'



와타나베는 이렇게 계속 편지를 쓰고, 소식 없는 미도리에게 자신의 그리움과 외로움을 알린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도리에게 연락이 오고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와타나베는 이런 말을 쏟아 놓는다.



'네가 입는 거라면 뭐든 좋 네가 말하는 거, 걸음걸이, 취한 모습, 뭐든 다 좋아.'



그리고선 정말 이대로가 좋, 나를 얼마나 좋아하느냐는 미도리의 거듭되는 확인 질문에 와타나베는 결정타를 날린다.



'온 세상 정글의 호랑이가 모두 녹아서 버터가 되어 버릴 만큼 좋아.'



아 이런…….

정말이지 반할 수 밖에 없는 멋진 사랑 표현이다.

                                                                   



와타나베의 애잔한 첫사랑, 나오코!



고등학교 2학년 봄.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처음 보게 된다.  와타나베의 절친인 <기즈키>가 데리고 나온다. 그러니까 절친의 여자친구다.

그 세 사람은 항상 함께 어울리며 나름 평온하게 잘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기즈키는 자신의 집 차고에서 의문의 자살을 하게 되고, 와타나베는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가즈키의 죽음을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는 말로 가슴에 품는다.



와타나베는 절친의 죽음 이후 <나오코> 우연찮게 나게 되고 점점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 되어 한없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나오코 또한 언제까지나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며 허망하게 밤하늘의 별빛처럼 사라진다. 기즈키처럼 그녀도 죽음을 선택하고, 와타나베가 붙잡을 수 없는 먼 곳으로 유유히 가버린 것이다.


'어둠'과 같은 존재 나오코.

그녀는 기즈키와 함께 와타나베에게  '죽음'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알려준다.


'삶의 대극이 아니라, 삶의 한 일부로 존재하는 죽음'

작가는 소설속에서 두 사람의 죽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죽음에 대한 작가의 깨우침은 정말 하나도 틀림이 없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와타나베가 대학에 진학해 기숙사생활에서 만난 인생선배 <나가사>.  그가 한 말이다.

삼십 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글은 읽지를 않는다는 대단한 독서가. 남들과 똑같은 것을 읽으면 남들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며 주로 고전을 탐독하는 나가사와.

여자도 대단히 좋아한다. 백여 명을 만났다고 할 만큼.

집안도 좋고 잘생기고 머리도 좋은 데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와타나베가 본 그의 미덕은 '정직', 그러나 술에 취하면 다른 숨겨진 모습이 있어 와타나베는 그에게 전적으로 마음을 열지는 않으리라 늘  맘먹는다.



'나한테는 권력욕이라든가, 금전욕 같은 건 거의 없어. 이건 정말이야. 난 천박하고 멋대로 사는 인간일지는 모르지만, 그런 거 하나는 깜짝 놀랄 만큼 담백해. 이른바 무사 무욕의 인간이라고나 할까. 그냥 호기심이 있을 따름이야. 넓고 거친 세상에서 내 힘을 시험해 보고 싶은 거야. ……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이상이 아니라, 행동규범이야.'

'저기, 나가사와 선배, 그런데 선배 인생에서 행동규범이란 건 도대체 어떤 겁니까?'

', 들으면 웃을 걸.'

'안 웃어요.'

'신사로 사는 것.'

'신사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지.'



한 번쯤은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 독특한 캐릭터의 남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은, 넓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 한껏 호기심 충만하던 이십 대 초반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이십대는 어떤 때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에 무엇보다도 심취했던 때가 아닌가 한다. 잊고 있었던, 그 나름 진지했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떠오르도록 잔잔하고 예리하게 주변과 상황을 묘사해 주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말  매력적인 작가다.



작가의 표현대로,

조용하고 평화롭고 고독한 일요일, 태엽을 감지 않는 일요일 같은 공휴일에 두 번 세 번 거듭, 한껏 그의 글 숲에 빠져 보았다.


나오코와타나베를 뒤따라 걸어보기도 하고, 미도리의 쿨하고 귀여운 웃음을 따라 웃어보기도 하고, 와타나베의 쓸쓸하면서도 설레는 여행길 동반도 해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덤으로, 와타나베를 통해 남자의 심리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등장하는 남자들의 캐릭터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내 인생에서 스무 살 즈음을 떠올려본다.



핑크빛이 아니다.

그래선지 그 혼돈의 시기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 또한 이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신입생으로 입학했던 시절, 사회는 무지 혼란스러웠으며, 개인적으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너무 괴로워 늘 수업을 빼먹고 학교도서관에서 책이나보며 들락거렸던 기억밖에 없다. 공상만 가득했다.

 그 누구보다 유쾌했으나, 내면으로는 늘 우울함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첫사랑의 느닷없는 좌절은 결정적이어서 '매우 가슴아림'으로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되고 있다.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해도, 그 모든 것은 아마 그렇흘러갈 수 밖에 없는 운명같은게 아니었까 싶다.  



'지나간 경험이 아무리 귀하더라도 내가 정말로 돌아가고 싶은 곳은 바로 지금 영원한 현재, 이 순간, 이 시간, 이 삶이다.' ㅡ작가 박이문


문득 이 글이 떠오른다.

나도 그저 현재, '지금의 나'가 좋다. 과거의 시간 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음을 부인하지는 않으나, '지금의 나'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함을 거듭 생각해본다. 지금의 나는 또 곧 '미래의 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진정 무엇을 해야할까?

진정 무엇을 해야 죽음직전에 후회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나의 경우엔,인생과 사랑과 음악을 와타나베처럼 하루키처럼 흠뻑 음미하고 싶다. 미도리처럼 '발랄한 생명력'을 고, 무엇보다 마음껏, 자유롭게, 글을 계속 쓰고 싶기도 하다.



<노르웨이 숲>의 작가 하루키는 말한다.

스물 언저리에서 방황은 당연함을. 그 시절은 충분히 혼돈스러우며 세상에 조금씩 눈을 떠가는 시기가 아니던가? 그리고 사랑에 또 많은 의미를 부여하던 시기가 아니던가?

그러니, 지금 이순간도 스물, 그 언저리에서 방황 하고 있을 많은 그 누군가에 게 작가는 '힘을 내라'고 은연중에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냥 이대로 주저앉아있기보다 '지금의 나'를 향해 좀 더 많은 칭찬과 격려로 소중히 살아가야 할 그 무엇이다. 

그런 의미에서 와타나베도, 미도리도, 달리는 김작가인 나도, 우리 모두들 파이팅, 파이팅이다!

                            




Cheer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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