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백석'의 시그림집 관람기
본명 백기행. 1912년 7월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29년 오산중학을 졸업하고 함흥 영생여고보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고, 1939년 만주의 신경(지금의 장춘)으로 떠나 유랑생활을 함.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 그 이후로도 꾸준히 '적막강산(1947)'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1948)' 같은 시를 발표하였으며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렀고, 최근 1995년 84세를 일기로 타계한 것으로 알려짐.
시인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시인.
경성의 모던 보이이자 로맨티스트.
이 문장들이 바로 '백석' 의 프로필이다.
국내에 '백석' 시인을 주제로 한 석ㆍ박사 논문만 총 600여 편에 이른다 하니, 세간에 그의 인기가 얼마나 많은 지 짐작해 보고도 남는다.
안도현 시인도 백석 시인을 베끼고 싶을만큼 사랑한다고 하니, 평안도 방언으로 쓰여진 생경한 시어들과 다양한 의성어 의태어를 잘 활용한 감각적인 표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색다른 감흥과 시를 읽는 재미를 준 게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내게 '백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사찰 '길상사'이다.
몇 해 전 한 번 가 보았을 때, 도심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멋스러움을 지니고 있어서 곧 다시 한번 찾으리, 했던 곳이다. 한껏 고즈넉했던 극락전 앞뜰 나무그늘 아래에 앉아, 번잡한 머릿속을 식히고 백석과 그의 연인 김영한을 씨익 한 번 떠올리고, 할랑할랑 성북동의 낯선 언덕길을 구경하며 걸어 내려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길상사.
예전 명칭은 '대원각'이다.
백석의 연인 자야(김영한)가 고급 요정으로 운영하다 법정스님에게 시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백석과 그녀와의 애틋한 사랑은 이미 세상에 충분히 알려져 있으니 그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련다. 다만 내게, '시인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라는 다소 우스운 궁금증을 만들어 주었던 연인들이긴 하다. 그 이유는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읽은 내용이 내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길상사'인 대원각은, 법정 스님에게 시주할 때 그 당시 계산법으로 대략 싯가 약 천억원 정도의 값어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건물을 흔쾌히 내놓은 자야에게 '시주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는냐'는 사람들의 물음이 당연스레 이어졌는데, 그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아, 이 런…….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거침없는 단언이다.
천 억과 시 한 줄이라…….
이루지 못한 사랑이 가장 오래남는다고는 하지만, 연인이자 시인으로서 백석이 어떠했을지 무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답변이다. 그가 사랑한 여인이 '자야'만은 아니었으나, 어쨌건 천 억과 시 한 줄은 그렇게 길상사로 갈음되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번 더 생각해보게 만든다. 나라면 과연 어떠했을꼬?
'백석' 시인을 눈여겨 보게 된 건 '모닥불' 이란 시 덕분이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이렇게 써도 시가 되는구나. 정말 모닥불이네.' 하며 내심 놀라서 시 제목을, 시인의 이름을 다시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주변에 널린 하찮고 평범한 소재들을 잘 조합하여 특별한 이미지로 구체화한 후, 보다 더 한 차원 높은 의미로 추상화시켜버리는 비상한 재주를 보았다.
모닥불 앞에 남녀노소 없이, 빈부귀천 없이 모두 모여 앉아 불을 쬐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리고 시의 끝부분에서 이어지는 슬픈 개인사는, 어쩐지 우리의 비극적인 민족사의 한 장면 같기도 해서 가슴 한 켠이 아린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닢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시는 그저 마음껏 상상하며 읽는 데에 묘미가 있다.
지나친 비약과 은유, 상징 등으로 도통 이해 할 수가 없거나 갖가지 해설이 주저리주저리 달려 꿈보다 해몽이 더 앞서버린 시보다는, '모닥불'처럼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선명하게 그려지고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들이 순간 딱 멈춰지는 그런 시.
그런 시들은 읽는 내내, 가슴에 환히 불이 켜진 듯 내 맘을 일렁일렁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렇게 그저, 시를 읽을 땐 어려운 해설 따위는 필요없이 편안하게 마음 내키는 대로 시적 상상을 해대가며 읽어가는 그 맛이 바로 시를 읽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 비록 시인의 작품 창작 의도를 함부로 오해범벅을 할 지라도 뭐 어떠하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역시 너무나 유명한 시이다.
이 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은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이다.
'사랑은'의 '은' 이라는 조사가 아주 마음에 든다. '은' 대신 '을'을 넣어본다. 시가 밋밋하고 식상해진다.
'은'이 들어가서 내가 현재 그녀를 여전 사랑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이름 '순이' 처럼 러시아의 흔한 이름 '나타샤'로 연인을 대변한다.
백석 시인은 '정겹고 한없이 사랑스러운 여인'을 나타샤로 부르면서,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 여전히 그리워하며 사랑'은' 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시를 나즉이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를 열망하는 생생한 그의 마음과 사랑이 전해진다. 읽을 때 마다 가슴이 아린다.
흰 눈이 폴폴 나리는 순백의 세상에서 술 한 잔을 앞에 놓고 자신의 곁을 맴도는 그 무엇인가를 골똘히 떠올리다가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랑스런 그녀가 자연스레 그리워졌을 터.
그런 그는 '차라리 산골로 가서 마가리(=움막)에서 함께 할 수 있다면'을 꿈처럼 상상했을 것이고,
그러다 '세상같은 건 더러우니 버리겠다'는 결단을 내려보기도 하며, 어렵고 힘든 현실 속에서 살아갈수 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재정비했을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시의 하이라이트는, 그 그리움의 부재에 대한 쓸쓸함을 별안간 흰당나귀의 '응앙응앙'이라는 재치있는 의성어로, 사랑하던 순간의 넘치는 기쁨과 행복을 압축하여 표현해내는 부분이다. 참 재미난 시인이다. 읽고 난 뒤에도 '응앙응앙'이라는 이 생경하고 생생한 시어가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다'
라고 말한 괴테가 떠오른다.
세상에 사랑처럼 강력한 생의 원동력이 또 있을까?
사람은 그 사랑의 즐거움과 희망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도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꼬 들려오는 탓이다
가끔 모든 것을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어깨 위에 부여된 무거운 짐들을 다 내려놓고, 마땅히 해야만 하는 모든 것들에 절대 외면에 외면을 더해 모르는 척.
마땅히 가야만 하는 길을 걸어가야한다고 말하는 모든 목소리에 대해 절대 외면에 외면을 더해 모르는 척.
그저 저 푸르른 하늘 속으로, 저 하이얀 보드라운 구름 속으로 훌쩍 날아가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외면한 체 거리를 걸어가는 것
그렇게 외면한 체 가볍게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들이 너무나 그리운 요즈음이다.
그래서 더 더욱, 고조곤히, 읊조려보게 되는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이다.
어쩌면 때때로 외면하고 좀 가벼워져 보는 것.
그것이 바로 백석 시인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삶을 잘 견딜 수 있는 비법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은 나도,
가을 언저리에 불어오는 잠풍을 타고
깊숙하게 파고 드는 그의 울림들을 결코 외, 면, 할 수없음이다.
#백석시의아름다움을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