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한가위와 나와 고향'의 상관관계
한가위가 긴 여름의 끝자락을 타고 자연스레 또 우리의 곁으로 쓰윽,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명절이 되면 앞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수순으로 꼭 고향에 오게 됩니다. 그 어떤 교통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어른이 되어 타향에 살게 되면서 명절날 고향을 찾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제 스스로도 놀랍네요.
무엇이 그토록 고향으로 찾아오게 만들까요?
혹시 어릴 적 뛰어놀던 이 곳의 흙과 나무와 바람과 공기들이 고향을 떠나 있는 저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늘 휘어감싸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알 수 없는 힘에 휩싸여 지내다, 이렇게 명절만 되면 또 알 수 없는 강한 힘에 이끌려 태어나고 자란 이 자리로 늘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바로 여기서, 이렇게, 큰 숨을 가슴깊이 들이키고 난 후, 저는 다시 생글거리며 복작거리는 대도시로 훌쩍 향한답니다.
어쩌면 여기서 얻은 생명의 기운들로 한없이 낯선 도시에서 몇 달을 또 몇 년을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러다 다시 지칠 때가 되면 고향인 이 곳으로 돌아와 온 몸과 마음에 한껏 가득, 충전을 반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향은 언제와도 늘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고 한없이 아늑하기만 합니다.
나사가 풀린 마냥 늘어져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이 곳!
숨결이 한껏 고즈넉해지고 마냥 부드러워지는 이 곳!
여기는 너무나 향그러운 제 고향, 순천이랍니다.
올 해도 변함없이 저는 이 곳에서 한가위 보름달을 맞이합니다.
오늘 한가위를 맞아 보름달을 보려고 한밤중에 잠을 떨치고 일어나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늘 저멀리 한가운에 두둥, 흐릿하게나마 구름 사이에 떠있는 달님을 찾았습니다.
깊은 밤이라 호젓한 나와 달님, 둘 밖에 없습니다. 사방은 고요하고, 나는 달님께 못할 말도 없습니다. 달님을 쳐다보고 마음 속 간직한 소원을 나즉이 빌어봅니다. 그 순간 왠지 나를 보고 달님은 환히 웃는 듯 합니다.
'네 마음 내 다 안다'
그리 말해주는 것도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달님 곁을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들을 가만히 쳐다보다
'만만치 않은 인생, 여기까지 나도 참 잘 흘러왔다'
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에게 칭찬도 정말 오랜만에 한 번 해 줘 봅니다.
'그래, 괜찮아. 잘했어.'
이렇게 고향에서 바라본 환한 보름달은 바쁜 도시생활로 한껏 무디어진 제 감성들을 켜켜이 일으켜 세워줍니다. 그리고 휘영청, 그 환한 달님은 은은한 달빛들을 저에게 계속 내보내줍니다. 그러면 나는 또 그 부드런 달빛을 선물로 받은 듯 온 몸에 휘감아 바쁜 나날들에 지친 마음과 피곤한 몸을 온전히 내맡깁니다.
달님의 온기는 여전 따듯합니다.
참 고마운 보름달입니다.
참 어여쁜 보름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