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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3. 2023

변신 히어로에 열광하는 이유


'가면을 써야 할 시간이네.' 


출근길에 카페에 들렀다가 문을 나서면서 든 생각이다. 나뿐 아니라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가면을 쓰고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속으로는 '으휴. 저 인간은 코로나도 안 걸리나. 꼴 보기 싫어 죽겠네'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아, 과장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멋지십니다. 하하" 이러고 있을 것 같다. 


나처럼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진상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아마 출근 전에 가면을 쓰고 변신을 하지 않았다면 그냥 넘기기 어려웠으리라. 출근 전이나 퇴근 후의 내가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다. 


퇴근을 하고 나면 일에 대해서는 일절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관련 질문을 해도 잘 받아주지 않는 편이고. 완곡히 거절을 해도 자꾸 요구를 하는 사람에게는, "개그맨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사석에서 한 번 웃겨보라는 요청이래요."라고 말하고 단호히 거절한다. 너무 한 것 아니냐고? 어쩔 수 없다. 변신 히어로들도 하루 종일 가면을 쓰고 있으면 힘들고 지치지 않을까. 배트맨에게도 브루스 웨인의 삶이 필요하고, 스파이더맨에게도 피터 파커로서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변신 히어로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때로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거나 도망가고 싶은 순간들도 있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히어로로 변신을 한 뒤 뭐든지 척척해내는 그 모습에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도 그런 변신 가면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1번을 누르면 직장인 모드가 발동된다. 어떤 일이든 척척해내고, 진상들도 아무렇지 않게 잘 다룰 수 있게 된다. 2번을 누르면 다정함 모드가 발동되어 아무리 피곤해도 소중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3번을 누르면 본래의 나로 돌아오게 되는데 온전히 혼자가 된 순간에나 쓸 수 있으려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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