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 Jul 13. 2023

그가 손톱을 기른 이유

손톱을 길게 기른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약재상에 팔 수 있다며 손톱을 길게 기르던 친구들도, 유용하게 쓰인다며 늘 새끼손가락의 손톱을 길게 기르는 아버지도 별로였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로 약재상에서 손톱을 사들였을까 싶다. 사실은 그냥 코를 후비기 위한 것인데 솔직하게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그랬으려나.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전체 줄을 얇은 플라스틱으로 된 피크를 이용해서 튕기는 스트럼 주법은 굳이 손톱을 기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줄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튕기는 핑거스타일 주법의 경우 손톱을 어느 정도 길러야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 물론 토미 엠마뉴엘 같이 손톱이 아닌 손가락 끝으로 연주하는 지두 탄현 기법을 쓰는 기타리스트들도 있지만. 


그래서 이제는 손톱을 기른, 혹은 자란 이들을 보면 양손을 번갈아 살핀다. 오른쪽 손의 손톱만 길다면 기타리스트 확정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긴 손톱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오히려 흥미가 생겨 "기타를 치시는군요, 저도 좋아해요."란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웃기지 않은가. 손톱을 기른 것이든, 신경을 못 써서 자란 것이든, 결과는 똑같은데 그 이유를 따져 좋고 나쁨을 나누다니.


결국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은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해석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양손의 손톱을 다 기른 이를 보고도 기타를 몸에 건 채 양손 주법을 구사하는 기타리스트라 생각하면 될 일이다.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것이 거부감을 느끼며 질색하는 것보다 훨씬 나으리라. 


오랜만에 그가 왔다. 항상 깔끔한 복장에 젠틀한 매너를 갖춘 그는 수의사이다. 사람들에게 친절한 것은 물론이고 동물들을 항상 아이들이라고 부르고 존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그의 손톱을 보았는데 양쪽이 다 길게 자랐다. 윽 하는 마음이 들려고 하다가 이내 사라졌다. 기타의 기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왜 그럴까? 평소 그의 행실을 알고 있기에,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저렇게 자기들처럼 손톱을 기르면 더 유대감을 느끼고 좋아하려나 생각하기도 하고 고양이를 쓰다듬는 도구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 도구는 사람에게는 꽤 아플 것 같이 생겼는데 고양이들은 온몸을 내어놓고 만다. 더 해달라고 냥냥 거리기도 하고. 도구가 없을 때도 그런 아이들을 기분 좋게 쓰다듬어주기 위해 손톱을 기른 모양이다. 


신뢰가 쌓인다는 것이 이런 것 아닌가 싶다. 그는 나에게 손톱에 대해 일절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그의 평소 행실과 그에 대한 내 마음이 합쳐지니 굳이 긴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꾸 화가 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