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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3. 2023

낡음이 싫지 않은 이유


부쩍 날씨가 추워졌는데 아이가 닳고 닳아 앞코에 구멍까지 난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바람이 슝슝 들어와서 춥지 않냐고 물으니 전혀 춥지 않단다. 다른 멀쩡한 신발들이 있는데 그 신발이 유독 좋으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사실 나도 그렇다. 유난히 편하고 좋은 물건들이 있다. 좋아하면 아무래도 자주 쓰게 되니 더 빨리 낡고 헤지기 마련이다. 낡음은 좋아함의 증거이자 흔적이었다. 


사랑을 비롯한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새롭고 짜릿하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편해진다. 좋아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만남이 잦을수록 서로가 가진 내용물의 소모 속도 역시 빠를 수밖에 없다. 서로를 꽤나 아프게 하던 모서리도 조금씩 닳아 없어진다. 설렘과 긴장이 사라지면서 조금은 심심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 상태를 자연스레 편안히 즐기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권태기라며 해결하려 애를 쓰거나 새로운 짜릿함을 찾아 떠난다. 



올해부터 아이와 함께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닳고 헤진 라켓의 손잡이가 함께한 시간을 보여준다. 94개, 어제 아이와 세운 주고받기 신기록이다. 73개의 종전 기록을 21개나 넘어섰다. 함께 호흡을 맞춰서 무언가를 이뤄가는 기쁨을 아이도, 나도 만끽하고 있다. 우리 정말 대단하다는 자화자찬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며 마시는 달콤한 음료 역시 큰 기쁨이다. 


가족, 친구, 부부, 직장 동료, 어떤 관계든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 같이 쓰는 것들이 낡고 헤진다. 물건뿐 아니라 마음 역시 그렇다. 서로로 인해 상처받고 흉이 지기도 하지만 함께 힘을 합쳐 무언가를 이뤄낸 경험들은 차곡차곡 마음의 훈장으로 남는다. 낡음이 점점 싫어질 때 한 번씩 그 훈장들을 바라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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