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란 게 입으면 입을수록 좀 늘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옷이 자꾸만 줄어든다. 불과 작년에 산 티셔츠들이 쫄티처럼 쪼그라들었다. 빨래를 잘못한 것일까. 도무지 줄어들 것 같지 않은 재질의 바지들도 자꾸만 줄어든다. 특히 허리, 배 부분이 더 줄어든다. 신발은 줄어들지 않는데 왜 자꾸 옷들이 줄어들까. 옷을 좀 제대로 만들지, 원가 절감 때문에 대충 만들었나 보다. 아니면 몇 번만 입으면 줄어들게 만들어야 옷을 또 팔 수 있어서 그러려나. 줄어든 옷들을 잔뜩 친구에게 줘서 별로 남은 것들이 없는데 그것마저도 자꾸 줄어든다. 이러다 입을 옷이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어쩌면 동화책 속 요정들이 찾아와 내 옷들을 줄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잠든 밤에 사람을 대신해 몰래 신발을 만들어 주던 그놈들 말이다. 도대체 그놈들은 왜 그러는 걸까? 세상의 옷 가게들에게 매수된 것이 틀림없다. 요즘의 아이들은 유튜브 때문에 동화책을 잘 안 보니 그들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으리라.
피해자는 나 혼자만이 아니다. 수십, 수백만의 요정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주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조금씩 옷을 줄여 나간다. 옷의 주인들은 요정들의 소행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매번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있고. 파렴치한 요정들은 옷 주인이 체중계에 오를 때 몰래 함께 올라가 그들을 속이는 만행까지 저지르고 있다.
속임수도 일품이지만 매일 입는 옷이 줄어든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요정들의 수선 솜씨가 놀랍다. 그 뛰어난 실력으로 조금씩 내 옷을 다시 늘려주면 좋으련만.
바지 사이즈 하나 올리는 것이 마지노선을 넘는 것 같아서 기를 쓰고 저지했던 적이 있다. 30인치에서 32인치로 갈 때였는데 결국 백기 투항을 한 뒤 30인치 옷들을 고스란히 보관해뒀었다. 다시 입을 수 있을 것이라는 굳은 기대와 함께.
물론 그 옷들은 몇 년 동안 빛 한번 보지 못하고 옷장 속에 얌전히 있다가 헌옷함으로 전부 사라져갔다. 그 뒤로는 한번 줄어든 옷들은 미련 없이 없애버리고 있다. 생계가 걸린 절실한 요정들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어제는 거의 비어있는 옷장의 반바지 칸을 보고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정들아, 조금만 덜 열심히 일해줄래? 쇼핑할 시간은 좀 줘야지, 이런 식이면 수선할 옷도 다 없어져서 너네 결국 또 실직한다. 적당히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