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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3. 2023

뒷담화를 하는 이유

여태 뒷담화는 나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쓸까 말까 열 번은 고민했다. 이것 역시 뒷담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서 대나무숲이라 여기고 내어 놓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뒷담화를 즐기는 이들은 결국은 당사자에게 새어나갈 이야기들을 하면서도 일절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주로 뒷담화를 주동하는 A는 B에게 C의 뒷담화를 한다. 그리고 B가 없는 날에는 C와 함께 B의 뒷담화를 하고. 너무 위험천만한 것 아닌가. A가 없는 날 B와 C가 이야기를 하다가 그 사실을 눈치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단 말인가.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A와 같은 인간이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일은 그럭저럭하지만 틈만 나면 소곤소곤 뒷담화를 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싫은지 모른다. 내 입장에서는 A보다 일은 좀 못하지만 뒷담화는 덜 하는 B와 C가 오히려 낫다고 느낄 정도이다. 전날 B의 욕을 실컷 해놓고 다음날 B가 출근했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로 대하는 A를 보며 참 가증스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요 며칠 이 문제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요시타케 신스케의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말한다. 뒷담화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뭐. 여기까지는 머리로 익히 알고 있던 것이라 새롭지 않았다. 근데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은 직장 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이라고. 아니. 대체 이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뒷담화 같은 것 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들이 훌륭한 것 아닌가. 


마음속으로 울컥하고 반발감이 생겼지만 꾹 참고 계속 읽어보았다. 결국 그의 논리에 설득되고 말았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무리 불만이 있다고 해도 면전에서 날을 세우는 것은 직장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잘하는 이들은 당사자가 없을 때 소곤소곤 뒷담화를 하는 것이다. 날마다 대상을 바꿔가며. 


그들이 그렇게 뒷담화를 하는 것은 오늘도 무사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라는 요시타케 신스케의 말에 탄복을 했다. 그래. 정말 그럴 수 있겠구나. 


그러고 보니 A는 요즘 꽤나 힘이 들어 보였다. 타인을 향한 악의 때문이 아니라 오늘을 무사히 버티기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하니 그를 향한 미운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어쩌면 뒷담화를 즐기는 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자신이 없는 날에는 다들 자신을 물고 뜯고 맛보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런 것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뒷담화 놀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사람이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힘겨운 직장 생활을 버텨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쯤 되니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뒷담화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인간관계에서 100% 만족스러운 상대가 어디 있겠는가. 그 불만을 상대방에 직접 털어놓으면 싸움이 되고 관계가 틀어질 위험이 있지만 제3자와 뒷담화를 하다 보면 어느새 감정이 누그러지고 그를 조금 더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뒷담화는 마치 글쓰기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지만 속에 있는 것을 내어 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훨씬 편해지는 효과를 가졌다는 점이 꼭 닮았다. 


뭐.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 마련이니 뒷담화가 좋으면 뒷담화로, 글쓰기가 좋으면 글쓰기로, 누군가를 향한 불만이나 미움을 내어놓으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리라. 나 역시 이렇게 글로 내어 놓으니 A에 대한 불만이 꽤나 누그러진 느낌이다. 앞으로는 변함없이 뒷담화를 하는 A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래. 오늘을 무사히 버티기 위함이지. 잘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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