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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펠 Jun 28. 2024

틀렸다고 하지 말아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은 재미있다. 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상대방이 틀리고 내가 옳은 경우에는 쾌감 정도가 아니라 짜릿하기까지 하다. 그런 것은 때로 내 평판에는 좋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만 도박처럼 끊기 힘든 일이 아닐 뿐, 남들 앞에서는 아니라도 혼자 몇 번이고 그렇게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옳고 틀린 것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나를 유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유순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을 뿐이다. 틀릴 것이 명백하다고 해도 딱히 무슨 말을 해주지 않지만 그건 단순히 '당해 보면 알아서 깨닫겠지'라고 하는 무관심과는 또 다르다. 내 무관심은 다른 사람에게도 무관심을 요구하는 그런 무관심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 않듯이 다른 사람도 나에게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수없이 옳고 그름에 대한 말을 듣지만 이제까지 그 말들 중 결과를 전혀 보지 않은 상태에서 덮어두고 따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건 내가 옳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이 나에게 내 방식이 틀렸다고 말할 때 내놓는 대안이 옳은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방식이 확실히 옳고 내 방식이 틀린 것이 확실하다면 그 방식을 따라가지 않을 방법이 없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 나에게 내가 틀렸으니 내 방법을 버리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경우에는 여유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백이면 백, '이게 낫지 않겠어?' 같은 유들유들한 권유가 있었고 그 권유를 다라 다시 생각해 본 끝에 방식을 바꾼 것이었다.
남이 틀렸다는 말처럼 유쾌한 것도 없지만 자신이 틀렸다는 말처럼 듣기 싫은 말도 없다. 그런데 그걸 나름 충격요법이라며 광고에 써먹는 걸 보면 정말 저게 광고일까 싶다. 노이즈마케팅 같지는 않은데.
얼마 전에 서점에 나갔다가 '역병'이라는 책을 보았다. 알베르 카뮈의 'Peste'를 번역한 소설인데, 그전에 이미 '페스트'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을 읽어 본 책이다. '라 페스트는 페스트가 아니다!'라는 띠지의 문구가 선명했다. 페스트는 사전으로 검색해 보면 '역병'이 맞다. 단지 흑사병이 페스트균으로 생기기 때문에 제목을 그대로 음차해서 페스트라고 해도 별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똑같은 설명을 '넌 제목의 Peste를 흑사병인 줄 알았지? 틀렸어!'라고 들리게 표현하는 순간 나는 그 책을 고를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도 뭔가 조금이라도 친절한 설명이 있는가 싶어서 아래에 작은 글씨를 읽어 보니 그런 건 전혀 없고 번역이 차원이 다르다느니 하면서 결국 '역병이 맞다'라고 싸움은 거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실제 역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출판사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개인적인 감정이 없다는 뜻이다. 단지 표지에서 오는 느낌이 너무나도 위화감이 들어서 책을 바로 내려놓았다.
간혹 인스타그램 광고 중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샀는데 당신은 왜 안 사요?" 같은 이상한 도발을 하는 것들이 있다.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먼저 필요해서 하는 노이즈마케팅도 아닌데 왜 자꾸 구매자를 뭔가 잘못하거나 뭔가 멍청한 사람 취급을 하려는 것일까?
물건을 파는 것과는 별개로 다르지만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년 전, 재활용품 분리수거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일반 쓰레기에 대한 쓰레기 종량제 제도가 시행되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데에 비용이 들게 해서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재활용품을 최대한 분리해서 배출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중에는 페트병도 있었고 20년 동안 사람들은 열심히 분리해서 배출을 했다. 배출해서 잘 될지는 모르지만 대충 하거나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면 재활용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니 분리배출만이라도 계도하는 대로 열심히 했다. 그렇지만 20년이 넘게 그렇게 배출해 온 결과 들은 소리라고는 "배출할 때 비닐을 뜯었어야 했는데 배출 방법이 틀려서 재활용이 되지 않았다!"였다. 그럼 20년 동안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 내가 보기에는 그냥 비닐을 벗기는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인건비를 들이기 싫어서 국민들에게 "니들이 하지 않아서 재활용도 못한 거야!"라면서 뒤집어 씌우는 데 지나지 않는다. 단순히 어려움이 있다거나 아니면 솔직히 "국민 여러분이 도와주시면 소수의 업체가 짊어지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서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될 것을 굳이 "국민들의 방식이 틀렸다!", "국민들이 잘못 버려서 재활용을 못한 게 이만큼이다!"라고 하면서 또 결론은 도와달라는 것이라는 게 웃기기만 하다. 그럼 국민들이 그동안 "생각 없이 하라는 대로만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해야 하나?
돈이 많다면서 분리배출을 전혀 하지 않고 죄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려도 할 말이 없는 세상이다. 재활용품이라고 모아둔 것도 재활용 불가능한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분리배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틀려먹었다니. 재활용의 의지가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남에게 틀렸다고 할 때는 한 번만 더 생각해보고 하면 좋겠다. 나야 나에게 틀렸다고 하면 속으로 씩씩거리기는 해도 어차피 금방 잊어버리고 무시하는 바람에 오히려 상대방이 약이 올라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돈을 받고 물건을 팔면서 그래서야 무슨 일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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