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낮은 곳을 향하여, 꿈은 높은 곳을 향하여

by 루펠 Rup L

중고등학교 시절, 조선시대의 글들을 많이 배웠다. 아래에서 위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배웠다고 할 수는 없으나 다른 책에서 제목이 언급되는 시는 대부분 배웠던 것 같다. 그중에서 자연을 노래한 시들을 보면 신선이 되고 싶다거나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반면 왕정 시대이니 당연하게도 왕과 조선의 정치를 칭송하는 내용도 물론 없지는 않다. 그 두 가지의 대비를 보면 아마도 내려놓을 수 없지만 내려놓아도 무사하다면 다 벗어버리고 싶다는 욕망의 표출인지도 모른다. 자연에 실제로 들어가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숨는 수준으로 정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겠지. 여기서 조정이 A이고 산골짜기가 B이면, B에 파묻혀 살고 싶다면서 그 장점들을 나열하는 것은, 순진하게 그 장점들 때문에 B에 가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A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토로한 것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장점만 있는 삶이 있을 수 있을까? 장점만 나열했다는 것 자체가 깊이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정약용 선생이 남긴 편지글처럼 산속에서 사는 삶에 단점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이러이러하게 극복하겠다고 했으면 '정말 가려는 생각인가?'라고 살짝 의심할 수 있었겠지만 무조건 좋다, 그래서 가고 싶다에서 끝나는 글이 어딜 봐서 실제 가겠다는 내용일까. 물론 실제로 혹해서 가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그 글을 쓴 사람들은 조정과 한양이나 고향에 정치 세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혹해서 혼자 훌쩍 떠날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글을 원 없이 쓴다는 것은 글을 쓰기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뜻이지 실제로 하루 종일 앉아서 글만 쓰고 싶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 말 그대로 '글을 쓰고 싶을 때 쓰는 것'만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말은 글을 쓰는 일이 생활을 간신히 해 나갈 정도의 수익을 얻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글을 쓰고 싶으면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은, 함부로 상황을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뭔가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뜻이지 꼭 그 의무가 없을 때는 글만 쓰겠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 말 그대로 여기서는 정해진 일을 해야 하는 것이 A이고 글을 쓰는 것이 B라면 앞에서 말한 대로 글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B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B에 대해 말하면서 단순히 A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하지만 벗어나기 힘들다는 불평일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반드시 스스로 쥐어짜는 목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멀리 보아서 최종 목적지가 그곳이었으면, 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을 위해 현재를 모두 희생해서는 안 된다.
이 이야기는 돈을 버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일정 액수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지금 이야기하는 내용과 초점이 벗어난다. 내 말은, 너무 자신에게 가혹한 목표를 정하고 하루종일 그것만 생각하는, 그러므로 실질적인 노력과 관계없이 구상과 또 그 목표와 현재 사이의 괴리로 인한 스트레스에 고민을 하느라 아무 소득도 없이 현재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이것과 다른 이야기이다. 또 어떤 액수를 원하든 그건 금융자본주의에 있어서의 목표이지 인생에서의 목표는 아닐 것이어야 하고 아니어야 한다. 만약 그런 목표를 세워서 미친 듯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말하는 목표는 그 액수가 아니라, 그 관점에서의 목표를 이루고 나서, 비로소 인생의 목표를 생각할 여유가 생기게 되면, 그때 가서 온 인생을 바치겠다는 생각이 드는, 심지어 그렇게 모은 돈을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최종적인 목표를 말하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고 나서 계좌에 찍힌 숫자를 눈으로 보고 죽으면 된다는 사람은 없다. 물론 매일같이 액수를 눈으로 보고 뿌듯해하는 삶은 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보험이 될 만한 돈이 있는 든든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것이지 그 액수가 삶의 목표인 것은 아니다. 자녀의 행복을 원할 수도 있고 도서관을 짓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다. 편안한 삶이든 뭐든 어떤 목표가 생기면, 당장 뭔가를 열심히 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가야 천천히 알게 되는 그런 커다란 목표가 생기면 바로 그 목표가 내가 말하는 목표가 된다.
내가 돈을 많이 번다는 목표를 세운다면 아마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어쩌면 사무실을 차려서 그 안에서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는 삶을 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쓴 글을 혼자 출판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미친 듯한 돌입이 아니라 길게, 오랫동안 밀고 나갈 수 있는 목표가 필요하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이 지점에 대한 것이다. 그때 정하는 목표라는 것이 지금 입장에서 미리 정할 수 있는 것인가? 지금 상황에 대한 단순한 불평이 목표라는 탈을 쓰고 서 있는 것은 아닌가? 조선시대 실세들이 쓴 글처럼 위기를 타개하고 싶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을 아무거나 집어 들고 '저랬으면 좋겠어!'하고 투정하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은 사실 치열하게 고민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한쪽에 치우친 기준을 가지고 바라보면 제대로 된 것이 나올 수 없다. 그렇게 꿈같은 상상을 하는 대신 지금 글을 쓰고 싶을 때 시간을 내는 노력을 하는 것이 더 소중할 수 있다. 그때 가서 자유를 위해 지금 돈을 모을 고민을 하고 투자에 뛰어드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자신의 마음도 간파하지 못하고 생긴 목표라면 결국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면 관심이 없어져 도리어 목표 없는 한량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글을 잘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있는데 계속해서 글을 쓰는 대신 '나는 1년 뒤에 글을 잘 쓰게 된다'는 말만 하루에 백 번씩 쓰면 글을 잘 쓸 수 있게 될까? 그런데 부자 되고 싶다는 말을 써대라는 책은 왜 그렇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