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그것도 콕 집어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한 시점에 일어난 일이었다. 친일파에 대한 이야기들, 일본에 대한 이야기들이 뉴스마다 난무한 가운데에서도 2024년 10월 18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하루 동안에 다 일어난 일이었다. 얼마나 특이한 일이냐고? 낮에는 반팔을 입고도 땀을 흘렸는데 저녁이 되자 추워서 점퍼를 입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 수도 없게 되었던 것이었다. 하루이틀 그러고 말겠지 했는데 이번에는 설악산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예전부터 농담처럼 나누었던 대화, 그러니까 "점점 가을이 짧아지는 것 같아."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옛날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어렸을 때는 '김장을 하면 항아리를 묻어야 하는데 땅이 얼어버리면 못 묻으니까 김치를 미리 담근 거야.'라던가 '툭하면 눈이 쌓여서 골목에서 미끄러지는 게 일상이었어.'라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해마다 아주 더울 때면 '옛날에는 에어컨 없이도 살 만했는데', 또는 아주 추울 때면 '옛날에는 이것보다 추웠지.' 같은 이야기는 거의 레퍼토리가 정해져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나도 거기에 더 보탤 생각은 없다. 단지 날씨 이야기를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캐나다에 있을 때여서 직접 겪지 못했지만, 월드컵 소식 외에는 유일하게 캐나다 뉴스에서 보았던 한국 소식이었는데 바로 2004년 4월 폭설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찾아보면 되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아니니까.) 4월 중순에 갑작스럽게 중부지방에 폭설이 내려서 위성사진에도 한반도의 가운데 부분만 하얀 띠가 만들어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뉴스에서는 기상이변이라는 말은 없고 단지 서울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정도만 전했던 것 같다. 그들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니까 그랬겠지만. 그런데 십 년 정도 지나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그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가끔 만나게 된다. 당시 서해대교를 지나다가 폭설 때문에 정체되어 기다리다 못해 행담도 휴게소까지 걸어간 이야기, 그냥 서해안고속도로 출구 가까운 곳이어서 그대로 엉금엉금 차를 끌고 목적지가 한참 남았음에도 시내로 나가 모텔을 찾은 이야기 등을 들었는데, 당시 상황이 그때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도 없었을 캐나다에서도 보도했을 정도로 심각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단지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런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 지금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만 당시에 모두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는 사실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긴, 지금도 모를 것이다. 둘이 붙여 놓고 대화를 시키면 그제야 반가워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한은 각자의 비상사태로만 기억할 것이다.
두 번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12월 중순이었다.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카드 만들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난로에는 나무를 잔뜩 집어넣어서 빨갛게 달궈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뜨거웠고, 공기도 그만큼 빨리 데워져서 쉬는 시간마다 5분씩 창문을 열어놓곤 하던 추운 날이었다. 방학 중에 크리스마스가 있다고 해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미리 만든 것인데 생각해 보니 우리 집은 그때 절에 다니고 있었다.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은 또 아니기는 했다. 선생님은 옛날에는 난로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데워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우리도 늘 그렇듯이 그날도 똑같이 "지금 도시락은 플라스틱이어서 올려놓으면 안 돼요."라고 대답했다. 가끔 오징어를 올려놓는 아이도 있었고 쥐포 같은 것을 문방구에서 사 와서 굽기도 했다. 한 녀석은 빨리 굽겠다고 난로 뚜껑을 열었다가 오징어에 불이 붙어서 버려야 한 적도 있었다.
그날은 그다지 먹을 것은 많이 굽지 않아서 공기는 난로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에서 나온 수증기의 냄새만 부드럽게 가득 차 있었다(선생님이 주전자로 난로를 선점한 것일 수도 있다). 두꺼운 종이를 접어 오려서 크리스마스 카드 표지를 만들고 다른 얇은 종이를 접고 색종이로 나무 모양을 만들어 붙이고 반짝이가 섞인 풀로 글씨를 썼다. 풀칠을 하고 반짝이를 뿌리면 예쁘게 만들어지기는 하는데 그러자면 반짝이를 털어내야 해서 차라리 반짝이풀을 조금 더 비싸게 주고 사 왔지만, 풀칠해서 넓게 펴지는 것을 상상했던 나에게 본드처럼 짜내야 하는 반짝이풀은 아무래도 글씨가 너무 얇게 써져서인지 모양이 너무 허술해 보였다. 내가 반짝이풀로 쓴 글씨를 연필을 문질러 조금 더 펴서 예쁘게 보이게 하려고 아등바등하는데 실제로는 종이에 연필자국만 나는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눈 온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창가로 달려가서 이미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나와 다른 여자 아이 한 명뿐이었다. 내가 그 광경을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면, 아이들의 머리가 창문을 반이나 아래에서부터 가리고 있고 그 앞쪽, 그러니까 나와 가까운 쪽으로 여자 아이 하나가 역시 창문을 보고 있고 선생님도 교탁에 기댄 채로 창문을 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스냅사진처럼 정지되어 있는데 창문밖에는 함박눈이 바람에 마구 휘날리면서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실내와 실외의 극단적인 움직임의 차이와, 눈이 올 정도로 흐리면 어둑어둑하기에 실내가 훨씬 밝은데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선명하게 보이던 커다란 눈송이들이 충격적이었다. 잠깐 스쳐 지나간 생각에 불과하긴 하지만 저런 눈을 놔두고 반짝이풀에 집중하고 있던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겨울에 대한 추억은 몇 가지 더 있는데 여름에 대한 추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의외라고 할 만한 일이 없어서일까. 여름은 응당 더운 법이고, 여름에 추웠거나 비가 멋지게 왔거나 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일까. 태풍이 오더라도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다 같이 견뎌야 하는 무엇처럼 받아들여진 게 아닌가 싶다. 만약 올해 여름처럼 더운 여름이 다시는 없다면, 올해 여름을 두고두고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한 달이 넘도록 에어컨을 끄고 잘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던 여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