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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펠 Rup L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고 시답잖은 드라마 대사가 귀에 들리자마자 뉴스로 채널을 돌리려고 하는데 <뉴스속보>라는 새빨간 자막이 눈에 띄었다. 뉴스 채널이 아닌데도 속보가 나올 정도면 정말 심각한 뉴스가 있는 게 아닌가. 뉴스로 얼른 채널을 돌렸다. 기자인지 아나운서인지의 또렷한 발음이 귀에 척척 박혔다.
"그러니까, 일단 사망하고 나면 체액이 부족하기 때문에 땀은 더 이상 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손을 잡히거나 하는 정도로는 감염의 위험이 숙주가 살아 있을 때에 비해 훨씬 낮다고 합니다. 시체는 박테리아가 마음껏 활동하기에는 체온도 낮고요. 그럼에도 돌아다니고 사람을 손으로 잡거나 껴안으려고 한다는 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분명히 어떤 감염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서일 거라는 건 꼭 명심하셔야 하고요..."
어떤 교수라는 사람이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아나운서가 말을 자른다.
"대구지하철 3호선에서 감염으로 가족들이 몰살된 것에 앙심을 품은 20대 남성이 고열 상태로 지하철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신고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접촉하신 분들은 모두 서둘러 나가셔서 자가격리해 주셔야겠고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시체와 손을 잡는다고? 그럼 저 앞에 서 있는 게 형 시체가 맞다는 건가? 그때 로봇으로 근처에도 못 가게 막으면서 운구해 놓고 화장을 안 했어?'
냉장고에서 맥주를 하나 꺼내왔다. 거실 소파에는 어제 읽다 만 책이 나뒹굴고 있었다.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지금 마음을 가라앉히기라도 하려면 그걸 펴 놓고 고개를 처박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텔레비전은 끄지 않고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책의 글자들을 쳐다보았다. 책을 읽는다기에는 글자 하나하나가 무슨 소리가 나는 글자인지조차 관심이 없었다.
날뿐 아니라 다음날도 출근을 하지 못했다. 며칠 사이에 사태는 점점 심해져 반드시 현장근무가 필요한 곳에서는 사람들을 현장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고 그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했다. 나를 비롯한 사무실 직원들은 모두 재택근무로 바뀌었다.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며 알려온 직원에게 지금 부장님과 통화하겠다고 말하자 감염돼서 출근하지 않았다는 말만 돌아왔다. 인터폰을 눌러보니 지금은 문 앞에 아무도 없었다. 편의점에서 맥주와 저녁거리를 주문했다. 편의점들은 일부 점포에서만 시행하던 로봇배달을 전 지점으로 확대했다. 무서워서 물건을 사러 직접 오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위험하게 배달을 나가겠다는 사람도 없었던 것이었다. 편의점에 물건을 배달하는 트럭들도 자동으로 물건만 내려놓고 갔다. 그러려면 운전이 한 차선 정도를 막아야 했지만 어차피 다니는 차도 별로 없었다.
그러던 것이 1년도 되지 않아 사태가 갑자기 진정되었다. 간간이 새로운 감염자나 사망자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거리에 시신이 보이는 대로 무조건 차례대로 화장을 했지만 서서 돌아다니는 시체에 손을 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기에 처음부터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부패가 진행되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개체만 로봇으로 수거했다. 그나마도 동물들이 시체를 뜯어먹다 다른 사람들에게 박테리아를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시행되기 시작했다. 탈 것 모양의 수거로봇은 미국에서 개발했다. 그 업체는 로열티를 낮게 책정했지만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회사가 되었다.

피해 정도는 당연히 나라마다 달랐다. 어떤 나라는 시체 처리를 죽은 사람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공무원들이 직접 하게 해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걸어 다니는 시체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숨기는 집들로 몸살을 앓는 나라도 있었다. 대부분 그것은 한 집안의 몰살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시체를 만져도 감염이 되지 않기에 안심했지만 결국 박테리아가 찾아낸 감염 경로는 마지막 순간 몸속에 가스를 집중시키고 그 가스의 압력을 썩어가는 피부가 버티지 못하고 폭발하면서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체액을 뒤집어쓰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살아 있는 감염자로부터의 전염이 새총이라면 시체를 통한 감염은 거의 수류탄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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