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된 지 두 달쯤 된 어느 날 평소처럼 악몽에 시달리곤 멍한 상태로 출근을 하려고 현관문을 여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 앞을 가구 같은 것으로 막아 놓은 것 같았다.
'내가 택배를 시켰었나?'
혹시 택배라면 들여놓으려고 장갑을 끼고 다시 문을 열었다. 장갑을 끼고 박스를 들여놓은 다음 천으로 덮어 놓은 후 서너 시간이 지나면 박스를 만지거나 내용물을 열어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을 밀다 보니 내가 그냥 일상적으로 주문하는 물건치고는 너무 육중했다. 라면이나 물 정도일 텐데 문이 열리지 않을 정도라니.
'택배가 아닌 것 같은데...?'
다시 문을 잠그고 인터폰을 향해 걷는데 뒤에서 철컥철컥하며 문손잡이를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아직 별 생각이 없던 나는 그게 뭔지 화면으로 먼저 보고 나서 판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인터폰의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뭐야?"
화면에 또렷한 형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디서 두들겨 맞고 왔나 싶었지만 곧 그건 시체의 특성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의 방향을 볼 때 아마도 손으로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이었다. 어차피 잠겨 있어서 열지는 못할 텐데 문제는 나 역시 출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잠시 그대로 서 있던 나는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정대리님이세요? 저 현수인데요."
"아 박 과장님, 오늘 지각하세요? 이 시간에 전화하신 걸 보면..."
"그게 아니라 오늘 휴가 처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언제까지요? 제가 부장님께는 말씀드릴게요."
"그게... 모르겠어요."
"네? 네... 무슨 일인데요?"
"혹시 지난번에 저희 부모님 하고 형이 감염돼서 돌아가신 거 들으셨죠?"
"네... 과장님도.. 그런 건 아니시죠?"
"그건 아니에요."
"그러면요?"
"네?"
"아니에요, 계속 말씀하세요. 과장님도 알고 보니 감염돼 있었다는 그런 말씀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것만 아니면 됐죠."
"대리님, 그건 아닌데, 지금 저희 집 문 앞에 형이 와있어요."
"네? 안 돌아가신 거예요?"
"죽었어요."
"네? 그런데 문 앞에 계시다고요?"
"네. 서 있어요."
"일단은 휴가는 내놓을게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내일도 못 나오시면 부장님께는 연락드리세요."
"알겠어요. 고마워요."
내가 미친 줄 아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다시 인터폰 화면을 켰다. 형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좀비인가? 그렇다고 해도 여기에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아파트 1층이긴 하지만 무슨 술을 진탕 마시고 무의식 중에 집에 잘 찾아오던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그때였다.
"삑삑삑삑 삑삑삑삑"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인터폰 화면을 다시 쳐다보니 형이 흔들흔들하면서 아래쪽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상태가 어떤지 몰라도 들어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삑삑삑삑 삑삑삑삑"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삑삑삑삑..."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문 앞으로 달려갔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와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소리가 이어졌지만 잠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멈칫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도어록 뚜껑을 열고 전선 커넥터를 뽑아버렸다. 걸쇠를 걸고 다시 거실로 와서 바닥에 털썩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베란다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다. 온 가족이 다 죽고 나 혼자 남고 나서부터 한 번도 걷은 적이 없는 커튼이었다. 1층이지만 거의 2층 높이라 밖에서 들여다보지는 못할 텐데도 우리 가족의 우울한 현실을 누가 들여다볼까 싶어 계속 닫아 놓았던 것이었다. 다시 힘없이 일어나 커튼을 살짝 젖히고 내다보자 천천히 배회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두 명 정도 보였는데 정상적으로 걷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자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피해 가는 모습이 보였다. 느릿느릿한 사람들은 깜짝 놀라 피한 사람들을 따라잡기에는 한눈에 보아도 불가능한 느린 속도로 다시 그 사람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뭐야? 진짜 좀비인가?'
아무하고도 눈이 마주치기 전에 커튼을 닫았다. 그리고 혹시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을까 싶어 텔레비전을 켰다. 인터넷이 더 빠를 수도 있지만 공식적인 뉴스가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았다. 백 년도 더 전에 좀비 영화나 드라마들이 쏟아졌을 때는 수많은 종류의 좀비가 탄생했었다. 걷는 좀비, 뛰는 좀비, 썩어가는 좀비, 천하장사 좀비, 심지어 몸의 균형을 완벽하게 잡고서 줄을 타고 건물 위로 올라가는 좀비까지. 아무리 그래도 형이 다시 찾아오는 건 아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