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긁어내는 마음

by 루펠 Rup L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또렷하지도 않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안다. 바다 저 아래 모래 위에서, 바닷물의 흐름에 따라 물고기들과 모래 알갱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가운데 뭔가가 조금씩 드러나는 것과 같다. 그것이 뭉쳐지고 뭉쳐져서 저 위, 수면에서 관찰할 수 있는 크기가 될 때까지 육지에 사는 우리는 아무도 그 존재조차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마음의 밑바닥은 몽글몽글하리라 생각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화가 날 때 마치 음식을 먹었을 때 위장이 움직이듯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수면이다.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성적으로 바라볼 것이 많아진다. 밑바닥을 깊게 파 들어가면 수면도 그만큼 덜 움직일 것이다. 같은 물결도, 깊은 곳에서 얕은 곳으로 급격히 나오면 격렬한 파도가 되는 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마음을 단련한다는 것은 마음의 깊이를 계속해서 파 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면 단순히 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르게 파 들어가서 깊이차가 많이 나는 곳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곳에서는 커다란 파도가 만들어져 전보다 오히려 더 급격하게 파괴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시작하기 전보다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지금 나는 도를 닦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나를 들여다보고 내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마음의 바닥은 부드럽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의 바닥이 바닷가처럼 모래로 되어 있다면 파 들어가는 것도 쉬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마음의 크기도 알지 못하고 깊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파 들어가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저 아래 바닥까지 내려가면 모래 알갱이들이 움직인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지반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순히 바닷물의 압력에 짓이겨진 흙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파 들어갈 만큼 부드럽지 않고 오히려 단단하다. 그래서 그 위에 굴러다니는 알갱이들이 스며들지 않게 버텨낼 수 있다. 그 알갱이들은 나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점점 커져간다. 처음에는 모래와 함께 굴러다녔겠지만 무게감이 생긴 어느 순간부터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마음의 바닥은 마치 사포와 같다. 처음부터 파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음을 솜사탕처럼 부드럽다고 잘못 생각한 덕에 마음을 다스린다는 엄청난 과업에 손을 댈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결코 이것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마음의 바닥이 사포처럼 거칠고 단단한 덕분에 나는 가라앉은 찌꺼기들의 뭉친 알갱이를 갈퀴로 모아 걷어내려고 한다. 아직은 어디에 모여 있는지, 모아도 그것을 가지고 나올 수 있는지, 읽어낼 수는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은 오직 나의 마음뿐이므로 나의 마음에서 뭔가를 건져낼 수 있는지 역시 나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읽어냈다고 생각하는 것도 종이 위에 표현해 보기 전까지는 읽어냈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내가 그것을 정확한 형태로, 혹은 문법에 맞는 언어로 풀어낸다고 한들, 그것이 내 마음이 맞다고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기다림, 기다림이다. 시간은 흐르고, 경험은 쌓여간다. 경험이 쌓여가는 시간은 더디다. 오히려 빠른 것은 쌓여간 경험의 시간들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나도 모르게 이루어진다. 흩뿌려진 경험들이 마음대로 분자의 구조대로 뭉쳐지고 결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 결정들은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내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감각들과 생각들을 분해하고 다시 모아서 만들어진다. 그들에게 내 경험은 우주와 같으리라. 아니, 바다와 같으리라. 그 경험들은 계속해서 분해되고 계속해서 결정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때로 물에 녹아 수면까지 영향을 끼친다. 결국 바닷물의 성질도 바뀔지 모를 일이다.
'나'라는 존재의 별은 너무나 작아서 바다 역시 지구의 바다를 생각하면 안 된다. 조그마한 연못 같은 것을 상상하면 되지만 그것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연못을 상상하면 연못에 비해 너무나 넓은 육지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어린 왕자의 별이 모두 바닷물로 둘러싸인 모습이 정확할지 모른다. 거기에 우리의 경험들이 별똥별처럼 계속해서 떨어지고 녹고 바닥에 쌓이는 것이다. 우리가 침대에서 미적거리면서 꿈을 꾸는 순간에도 별똥별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결정은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쉬지 않고 이루어지는 작업 안에서 나는 바닷물에 고개를 담그고 그 결정을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바닥을 긁고, 건져낼 만한 크기로 자라난 결정이 있는지 살펴보지만 바닥은 거칠어서 손끝이 쓸리지만 딱히 걸리는 것은 없다. 손가락 끝이 바닥에 마찰되며 떨리는 진동에 결정이 빠져나가는 걸까. 이제까지의 경험들과 수많은 생각들, 외부에서 오지 않은 생각들은 그대로 결정을 이룰 수도 있지만 바닷속 화산에 닿아서 아주 많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열처리를 끝낸 결정은 기존의 결정과 다를지도 모른다. 그 열 때문에 결정이 물에 녹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그 결정을 꺼내어 바라볼 때에야 확실해질 것이다. 그 그림을 그리고 그 글을 써 보아야 내 내면에서 흐르고 있던 기쁨과 불안이 무슨 의미였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보이지 않는 눈을 치켜뜨려고 하고 바닥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바닥에 닿지 않는 갈퀴를 휘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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