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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우경 May 16. 2018

농부 통신 123

아프니까 기네스

30cm 간격으로 고추를 심으며 3km쯤 게걸음을 치거나 열흘째 말도 못하는 사과나무를 붙잡고 적과를 하다보면 고추가 싫고 김치가 싫고 김치를 먹는 당신들도 싫어지다가 문득 중얼거리게 된다. 사과 대신 오렌지를 드시라니깐.


3km가 5km가 되고 열흘이 보름이 되면 중얼거리는 일 따위도 사치가 된다. 그저 고추를 심고 고추를 심고 고추를 심다가 열매를 솎고 열매를 솎고 열매를 솎는데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 스스로 움직이며 고추를 심고 열매를 솎는 팔다리를 멀거니 바라보며 오롯이 붙잡게 되는 화두는 '몸'.


몸 아니고는 농사 따위 택도 없지. 몸 아니고는 참깨 한 알 저절로 나지 않고 몸 아니고는 너른 들 모 한 포기 꽂지 못하지. 전열선을 깔고 상토를 마련하고 씨를 붓고 100일을 이불을 덮었다 벗겼다 물을 주며 가꾼 저 고추 모종 한 포기도 다 몸이 한 일이지. 거름을 넣고 밭을 갈고 이랑을 짓고 비닐을 씌우고 모판을 옮겨 고추를 심고 물을 주고 북까지 줘야 겨우 고추를 심었다 싶은데. 휴대폰으로도, 돈으로도, 신앙으로도 안되는 순전한 몸의 영역들. 미련스러워야 겨우 하고 꾸역꾸역 아니고는 이룰 수 없는 저 지난한 몸의 일들.  


그러니 몸이 밭이고 몸이 밥이고 몸이 곧 우주인데 다만 지구 밖은 너무 멀어서 무릎이 고장나지. 그래서 허리가 굽고 그러니까 팔을 못들지. 연골이 닳도록 고추를 심고 어깨가 빠지도록 열매를 솎았는데도 희한하고 놀라운 건 몸의 고통은 언제나 새삼스럽고 늘 한결같다는 것. 매번 아프고 항상 아프지.


5km 고추를 심고 돌아와 숨쉬는 것도 귀찮은 저녁. 몸은 딱 비 젖은 겨울용 혼수이불. 널자니 빨랫줄이 끊기겠고 펴자니 바닥이 진창인데 그래도 아아 집이구나. 장화를 벗고 손을 씻고 간신히 토마토를 썬다. 편맥은 이런 날을 위한 안배. 아프니까 청춘은 개뿔. 아프니까 기네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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