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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우경 Jan 12. 2019

화투공동체를 위하여

- 농한기 경로당 풍경

저 작은 지팡이의 주인은 두릅실 장씨 할배. 지팡이 없으면 한 걸음도 힘든 노인. 날도 추운데 집에 계시잖고요. 집에 있으면 심심하잖은가.  

 
그렇지. 다들 심심하시지. 겨울철 농한기 심심한 노인들을 위해 매일 아침 경로당이 열린다. 오픈은 아침연속극 '별이 되어 빛나리'가 끝난 뒤. 연속극이 끝나면 이 골짜기 저 언덕에서 노인들이 온다.  
 
남녀가 유별하니 '할마이경로당'은 마을회관, '할바이경로당'은 다리 건너. 날이 추울수록 오픈 시간이 빨라지는 건 경로당이 집보다 따뜻하기 때문. 올겨울 면에서 난방비를 이상하게 많이 줬네. 아, 선거가 있잖어. 
 
'할마이경로당'은 오픈하자마자 쌀부터 안치고 착석. 시래기에 김치 한쪽이라도 같이 먹으니 꿀맛이지, 영감 가고 혼자 먹는 밥은 에이 징그러. 
 
밥이 되는 동안 구이장댁은 판을 깐다. 군용모포가 깔리면 둘러 앉아 주섬주섬 고쟁이속 동전을 꺼내는 게 순서. 초단이야 청단이지 풍약에다 비약이로구나. 오늘은 예안댁 끗발이 오르는 날. 아 글쎄 많이 따는 날은 삼천원도 딴다니까. 하지만 따는 날보다 잃는 날이 많아야 서로의 끗발을 챙기지. 예안댁 앞에 수북한 저 10원짜리는 몇 년째 고쟁이속만 옮겨다녔을 터. 그나마도 밥 먹자고 판을 접을 때면 도로 다 돌려준다. 왜요? 도로 줘야 또 놀지. 화투는 그저 핑계. 어제의 멤버가 별일 없이 오늘 나와주는 것만도 감사하고 고마운 여기는 화투공동체.  
 
'할바이경로당'은 냄새부터가 다르다. 문을 열면 곰방대에 담배 아니라 올드스파이스를 넣어 피운 듯한 비릿함이 느껴지는데 영락없는 쇠멸의 냄새. 그래도 70대는 젊다고 고스톱을 치고 쪼글영감들은 장기판에 모였다. 켜둔 티비는 종편 고정.  
 
월급 주는 아지매가 차린 점심을 먹고 나면 커피내기 '쩜백' 순서. 오늘은 만석봉다방 차롄가. 어제가 청운다방이었으니까 맞을걸. 새로온 아가씨가 박양이라지. 박양은 본전다방이고. 몸은 경로당이더라도 마음만은 씨름판인데 정작 배달 온 이는 만석봉다방 사장. 어허, 아가씨는 어디 가고? 아가씨는 2천원짜리 배달 보냈지. 원래 커피값은 2천원인데 경로당에서 먹는 커피만 1천5백원이라지. 오, 위대할손 경로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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