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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우경 May 16. 2018

농부 통신 115

군불을 넣으면

벌써 장작더미가 낮아지는가. 일찍 춥더니 눈이 잦다. 소한 대한이 멀었는데 겨울은 저 혼자 깊어져서 내성천을 얼리고 얼음 아래 자맥질을 하고 있다. 얼음이 꽝꽝이어도 썰매를 탈 아이가 없는 마을. 늙은이들 경로당에 모여 도리짓고땡을 치면 기왕지사 황된 인생이어도 가끔은 갑오도 나오고 더러는 장땡도 나오지. 구구리에 망통이면 어떻고 심심새에 한끗이면 어떤가 낮술에 취하긴 매일반 어스름에 돌아와 군불을 넣는다.


맞변을 빌리던 시절도 있었지. 부살개에 솔가지를 얹고 성냥을 그으면 열기보다 먼저 번지는 연기. 봄에 십만원을 빌려서 가을에 이십만원 갚는 맞변을 어떻게 견뎠나 몰라.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어서 너른들 스무마지기 안팔고 버텼지. 장작을 넣으면 처마밑까지 환해서 저 차가운 어둠도 두렵지 않은데


늙어서야 겨우 알았네. 정작 두려운 건 어둠도 아니고 빚도 아니고 아궁이 앞에서도 무릎이 시린 생의 한기. 가마솥의 물이 쉬이익 끓고 장작이나 두어개 더 넣으면 새벽까진 아랫목이 설설 끓는데 피할 수 없더군. 입김을 내쉬며 대문 밖에 서 있는 저 고요한 한기. 아궁이 깊이 장작을 밀어넣고 대문 밖을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들면 겨울 바람에 풀풀 날리는 부지깽이 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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