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기 같은 봄
봄이 꼭 경운기 같지 뭐.
새벽부터 이랑을 짓고 비닐을 씌웠는데 비가 주룩주룩 감자는 또 언제 심누 젠장 하다가 문득, 전지하고 남은 잔가지를 부시려고 빌린 파쇄기 궤도가 벗겨져 아우 썅 하다가 퍼뜩, 작년 고춧대를 뽑다가 가지에 눈이 찔려 제기랄 하다가 잠깐, 어 저기 진달래가 피었네.
그렇지 진달래, 아무렴 벚꽃. 목련은 진작 지고 자두꽃이 필랑말랑. 봄이라 일은 산더미. 잦은 비에 일이 늦어 매사에 다 씨근벌떡하는데 저기 경운기가 간다. 감자밭에 넣을 밑거름을 사러 가는 길. 마음은 급한데 추월 불가 쭐레쭐레.
봄에 경운기를 만나는 일은 다반사. 길은 좁고 경운기는 안달음을 치거나말거나 느릿느릿. 저 경운기가 저기 갈림길에서 따로 가지 않는 이상 나는 그저 경운기 속도에 맞춰 갈 수 밖에 없지. 클러치를 반쯤 밟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뗐다 하면서.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 꽃 한 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구나 흥얼거리면서.
해마다 봄은 그렇더라. 할 일을 생각하면 팔다리가 미리 아프고 일에 치여 앞뒤 없이 폭주하다가 덜커덕 경운기를 만나게 되더라. 좁은 농로에서 경운기를 만나 어쩔 수 없이 쭐레쭐레 따라가게 되더라. 가는 동안, 아, 그래 봄이었지. 벚꽃도 피었고 금방 살구꽃 피겠네 후아 저기 저기 저 진달래.
경운기는 갈림길에 닿기도 전에 논두렁에 바퀴를 넣으며 억지로 길을 비킨다. 갑대할배시네. 차창을 내리고 인사를 건넸다. 뭐하러 일부러 비키시니껴. 아, 요새 세상에 경운기가 길을 막으면 쓰나. 봄이라 바쁘시지요? 바쁠 게 뭐 있다고. 늙으면 봄이 꼭 경운기 같지 뭐.
그러네요. 봄이, 경운기 같은 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