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미낙 Jun 26. 2024

이민 말고 귀촌 (11)

믿을 수 없이 적막하고 확고히 시끄러운

시골이 적막해서 싫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내 시골살이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시골이 적막하냐고? 그렇다. 적막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또 그 반대이기도 하다. 시골은 확고히 시끄럽다.


집에 놀러 왔던 친구가 자고 나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근데 무슨 방송을 이렇게 쉴 새 없이 해?" 친구가 방문했을 때 마을 방송이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영문을 몰랐다. "지하철 방송 소리가 계속 나던데?" 내가 인지하지 못한 게 있나 싶어 마당에 나갔는데, 따라 나온 친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거 혹시 방송이 아니라 새소리야?"


새가 시끄럽다는 걸 시골에 와서 알았다. 새들은 정말 쉴 새 없이 지저귄다. 텃새가 조용히 하면 철새가 지저귄다. 저들끼리 영역 경계를 하며 지저귀기도 하고, 구애를 위해 지저귀기도 한다. 새들은 낮밤을 가리지도 않는다. 밤에는 밤에 우는 새가 등장한다. 새벽에 우는 새도 있다. 그러니까 시골에서는 새소리가 마치 배경음처럼 항시 깔려 있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옛 시대의 사람들이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라고 표현하는 장면을 접하게 된다. 시골에 와서 그에 대해 조금 이해했다. 모든 새가 갑자기 입을 닫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숨 막히는 정적이 찾아온다. 그건 실로 불안한 느낌이다. 새들이 동시에 침묵하면 이내 천둥 또는 벼락이 치거나, 돌풍이 불거나, 갑자기 폭우가 퍼붓거나, 전투기가 지나가거나 한다. 상시 알람을 켜 놓은 느낌이다.


새만이랴. 벌레도 만만치 않게 시끄럽다. 시골에는 갖가지 크기의 다양한 벌레들이 온갖 소리를 낸다. 벌만 해도 꿀벌, 말벌, 호박벌, 땅벌, 모두 날갯짓 노이즈 주파수가 다르다. 여치, 메뚜기, 베짱이 소리도, 개구리, 두꺼비, 맹꽁이 소리도 만만찮다. 어디서 공사를 하나 싶으면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고, 옆마을에 공사를 시작해서 공사차량이 지나다니면 까치와 까마귀가 낯선 놈들 다닌다고 온갖 수선을 피운다.


새끼고양이가 울고, 고라니가 고함치고, 멧돼지가 꽥꽥댄다. 앞집의 수탉이 목청을 높이고, 그 앞집의 오리가 코러스를 넣는다. 이쯤 되면 의구심이 든다. 시골이 적막하다고 한 사람은 제정신이야?


사실 시골은 적막하다기보다 고요하다는 느낌이다. 농번기 때를 제외하면 인기척이 별로 없다. 확성기 소리가 없고, 말소리가 없다. 차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 공백을 자연이 채운다. 새와 벌레, 동물과 식물, 바람이 채운다. 그 자연의 소음이 만드는 고요함은 적막함과는 다르다.


시골에서 적막함을 느낀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지 않을까. 나는 그 외로움을 도시에서 느꼈다. 소음으로 가득 찬 도시 한복판에서, 날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인파 속에서, 나는 소름 끼치는 적막함을 느꼈다.


미국의 한 소도시에 사는 친구도 같은 말을 했다. 도시의 소음이 없으니 온갖 자연의 소리를 듣게 된다고. 이 부분에서만큼은 이민을 가나 시골에 오나 마찬가지일 거다.


도시에서 누리던 문화생활을 누릴 수 없어 시골에 가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쯤은 영화관을 가고, 독립영화관에서 예술 영화도 보고, 기다렸던 공연이 있으면 티켓팅을 한다. 좀 불편할 순 있어도 못 즐기는 게 아니다. 대신 도시에서 못 누리던 자연을 누린다. 계절을 시각으로, 청각으로, 후각으로, 온몸으로 느낀다.


이 새는 전시관에 가서 본 거다. 새 얘기 한 김에 끄집어 내 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