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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스넷 Sep 26. 2023

네 몸 던져 가을을 알리는 너

자연계 오지라퍼

몇주 전 아이들이 이른 독감에 걸렸다.

첫째가 독감에 과호흡으로 사지가 뒤틀려 응급실 다녀왔다.

그리고 곧장 둘째가 병을 옮아버렸다.

꼬박 10일을 애들을 챙기다 보니

하루가 너무 짧은 듯 했다.


첫째가 끙끙 앓고 나아지더니

둘째가 끙끙 앓는다.

참으로 '독한 감기'라 독감인가 싶었다.


10일간 애들 옆에서

자다 깨며 쪽잠을 잤더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직찍 / 도용금지


이러다 내가 몸과 마음이 모두 병날 것 같아

오늘은 막내를 등원시키고 집 근처 공원을 걸었다.

좋아하는 오디오북을 들으며

자연의 내음을 맡으며

내 안에 있는 답답함을 뱉어버리고

몸을 크게 움직이며 굳은 근육들을 깨웠다.


살 것 같았다.



셋째를 낳고 한 달도 안 되어 담낭수술을 했다.

애 둘에, 신생아까지..

나도 모르게 우울증이 다가왔다.

나로 인해

신랑이 힘들어했고, 아이들은 눈치만 살폈다.

내 우울증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다행히 심리상담가인 지인의 직업적 눈썰미로

내가 우울증이 심하다는 걸 알았고

정신과 진료를 권했다.

진료예약날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일이 생겼다.

한번 예약하면 3개월은 기다려야 하는 터라

진료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 우리나라에 마음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나...'


체력부족으로 애들에게 더 예민하게 구는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막내가 자는 시간에 홈트를 시작했다.

막내가 너무 어려 밖에 나가는 건 무리였기 때문이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도 하니 마음이 다스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종종 주변일로 인해 심적 제어가 안 되는 날은

어김없이 우울증이 치고 올라왔다.

눈물이 막 났고, 신경은 곤두서있고,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우울증을 완전히 없앨 순 없지만

우울증이라는 수치를 어떻게 내릴지는 알게 되었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는 것, 나를 채울 것을 하는 것.

이것이 내 우울증을 다스리는 최고의 방법이다.




 코스를 돌고 나와 공원숲길 안쪽으로 들어갔다.

코로 깊게 들이마시고 입으로 길게 뱉었다.

내 안에 있는 불순한 것들이 다 빠질 만큼 길게..

주변 초록색은 언제나 내게 안정감을 준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눈도 피곤함이 풀린다.

그래서 내가 도심 속 자연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길을 따라 성큼성큼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뭔가 통하고 소리를 내며 내 머리 위를 두들겼다.


직찍 / 도용금지 @가익히

'뭐지?'라고 생각하자마자 땅바닥으로 뭔가 떨어지는 게

내 눈에 빠르게 포착됐다.


"도토리구나."

'가을이구나. '

나는 선선해진 공기를 다시 한번 들이마시며

폐 속까 깊게 채웠다.

가을로 나를 가득 채우고  채웠다.





도  토  리


이쯤 되면 어김없이 너는 찾아온다.

제 몸을 내 던져가며 가을을 알린다.

통통통

토실토실 매끈매끈

너의 모습을 보니

설렘에

내 심장도 통통통



도토 덕분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직접 찍었습니다. 도용을 금합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근심도, 고민도 심지어 행복함까지

그냥 나를 텅 비운다.

그리곤 비운 곳에

무언갈 채우고픈 의욕이 솟아난다.


이렇게 자연은

존재만으로도 많은 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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