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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스넷 Sep 26. 2023

미안해 변종인줄 알았어.

자연계 오지라퍼

내 눈엔 귀엽지만 (*/ω\*) 혐오 사진 주의 ** 비위 약하신 분들은 스크롤 금지



 저번주 금요일

아이들을 모두 등교 등원 시키고 집 근처 공원을

 돌면서 조깅을 했다.


담낭 수술을 한 지 7년이 넘어가는데도

종종 소화불량이라는 부작용이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면 먹던 양을 줄이고

식이섬유를 늘리고 운동을 시작한다.


전날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속이 더부룩한 탓에

금요일 아침은 아예 운동복으로 입고 나왔다.

막내를 등원시키고 곧장 조깅 코스롤 발걸음을 향했다.


유치원 뒷문으로 이어진 공원과 조깅코스는

코 앞 병설 유치원을 마다하고

이곳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조깅이나 워킹을 할 때면 땅을 보고 걷는다.

이유는 바닥에 있는 지렁이, 달팽이 혹은 그 무언가를

밟지 않기 위함이다.


한창 워밍업으로 파워 워킹을 하고 있는데

지렁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달팽이라고 하기엔

등에 집도 없었고 너무 크고 통통했다.


다 죽어갈 듯 힘없이 아스팔트 위에

축 처져 있는 게

육안으로 봐도 곧 숨이 끊어질 듯했다.

(난 왜 이런 게 느껴지는 걸까..)

잎사귀로 들어 촉촉한 땅에 올려줬다.

그리고 혹시나 먹을까 싶어

싱싱한 이파리를 뜯어 코앞에 놔줬다.


그 녀석과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누군가에게 밟혔거나

자전거에 깔렸거나

하는 형상으로

아스팔트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다음 날 신랑과 오전 조깅을 했다.

일부러 방향을 어제 만난 녀석 쪽을 향해 달렸다.

신랑에게 어제 이야기를 하고

그 녀석에게 찾아가니

예상대로 하늘나라로 갔다.

묻어 줄까 하다가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라 생각하며

좋아할 것 같은 푸른 잎사귀로 덮어주고

속으로 짧게 기도를 했다.




근데 어제인  월요일,

그 녀석의 정체를 알았다.

어김없이 같은 코스를 돌고 있는데

떡하니 바닥에 기어 다니는 녀석.




사진을 찍어 구글링 하니 민달팽이라고 나온다.

그러지 않아도

비가 많이 왔던 올해

자주 출현 했던 달팽이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서

뭔 일 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 동네 7년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통통한 녀석이 나타나니

순간 변종이 아닌가 의심까지 했었다.


' 근데 민달팽이가 도심에??? '




 나는 자연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절대 손으로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가보호나 방어능력이

어떤 식으로 인간에게 독으로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연은 순한 듯 하지만 절대 순하지 않다.

함부로 침범하면 응당한 반격을 하는 게 자연이다.


 잎사귀를 뜯어 올라가도록 유도했다.

유도랄 것도 없다.

그저 코앞에 놔두면 조용히 기어 올라간다.


겉싸개에 쌓인듯한 민달팽이


요즘 공원 곳곳이 벌초로 인해

제일 신난 건 까치와 새들이다.


벌초된 풀밭에서 열심히 뭔가를 꺼내먹고

쪼아 먹고 사람이 옆에 지나가도

경계 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녀석이 혹시라도

먹이가 될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숲 쪽에 깊숙한 곳에 놓아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조깅 코스와 전혀 다른 숲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치와 눈이 마주쳤다.

열심히 뭔가를 쪼아 먹고 있는 까치가

입구에 턱 하니 있었다.


까치와 눈이 마주쳤다.


당연히 그럴 리 없겠지만

내 손에 있는 민달팽이를

까치에게 들킬까

본능적으로 손안에 뭔갈 감추듯 살포지 쥐었다.



어느새 머리를 이정도로 ...


내가 주은 이 녀석이

새들의 먹이가 될까...

또 아스팔트로 기어 나올까 싶어

숲 속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습하면서도 땅이 촉촉하고

잎사귀들이 많은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살포시 내려놓는다.

그러면 알아서 내려간다.


난 그저 옆에서 거둘 뿐...

모든 건 이들이 본능에 충실히 움직이도록

해줘야 한다.



지난주에 봤던 녀석이 죽어서

마음이 많이 쓰였는데

이 녀석을 이렇게 내려주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집으로 향해 가는 길.

작은 토종 달팽이가 아스팔트 위를 지나간다.

조깅하는 사람들에게 밟히거나 자전거에 깔리거나

혹은 새들에게 잡아 먹히는 것은 자명할 듯싶었다.


순리에 맡길까 하며 지나치다

발걸음을 돌렸다.


손에 살포시 올려놓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오자마자 페트병을 깨끗하게 반복하여 씻고

상추를 꺼냈다.

잔류하는 농약을

다 씻어 내릴 심산으로 뜨거운 물로 세척했다.


입구를 만들고 상추를 넣은 뒤 그 위에

달팽이를 올려놨다.


30분이 좀 지났을까..

집안을 정리하고 들여다보니

움직임이 없다.


1시간 뒤 다시 들여 다 보니

여전히 미동이 없다.


죽었나 싶어 살짝 건드리니

얼굴 쪽에서 촉수인 더듬이 두 개가 쑤욱 나온다.


피곤했나 보다.

곤히 자는 걸 깨웠나 보다.

괜스레 미안했다.



그리곤 열심히 상추를 먹는다

올 겨울은 우리 집에서 지내고

내년 봄비에 방생해 줘야겠다.


맛있게 먹어.

여기는 상추맛집이니까 :)


달팽이 이름 짓다가 빵 터진 에피소드는 다음번에..(별거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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