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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Feb 22. 2024

다쳤어도 사카타까지

일본종주 11일차 : 아키타에서 사카타까지

  새벽 4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좁고 불편한 넷카페 부스 구조 때문이었까. 일어나자마자 어제 박혔던 손가락의 가시들을 빼내기 위해 붙여둔 밴드를 간절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뜯어보았다. 피부에 파묻힌 것 같았던 반투명색의 검은 점들이, 퉁퉁 불은 손가락에서 까맣고 선명하게 밀려 나와 있었다. 효과가 있었다! 베이킹 소다 때문에 삼투압의 원리로 가시가 밀려 나온다고 했는데, 역시 과학의 힘은 위대했다.


그나마 있던 손톱깎이를 꺼내어 하나하나 가시들을 뽑아냈다. 꼭 원숭이가 꼭 털 사이의 이를 잡듯 그 짓을 넷카페 부스에 앉아 새벽 6시까지 2시간 동안 했다. 어느 정도 큰 가시들은 꽤나 많이 뽑힌 것 같았지만, 아직 작거나 잘 보이지 않는 몇몇 잔가시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넷카페가 시간제여서 더 이상 오래 있다간 요금이 계속 늘어난다. 슬슬 라이딩도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언제까지 가시만 뽑겠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수십개를 뽑았는데 여전히 남아있었던 가시들...


  결국 나름 큰 도시인 아키타에서 만들었던 기억이라고는 저녁밥으로 아키타의 명물도 아닌 체인점 규동과, 호텔도 아닌 넷카페에서의 숙박뿐이었다. 어제 낙차만 안 했더라면, 여유롭게 아키타에 도착해서 맛있는 아키타 명물도 먹고 이곳저곳 명소에 갔을 텐데. 센슈우 공원, 나카지마 기념 도서관… 다음을 기약하며 이들은 모두 구글맵에 저장해 둔 장소로 남아버렸다. 


  아침 7시가 되어 어제 샀던 100엔 식빵을 쥐어물고는 출발 준비를 했다. 며칠 째 여러 끼를 가장 값싼 식빵으로 때웠다. 이제는 식빵만 봐도 물릴 지경이다. 결국은 다친 것도 문제이지만 음식의 여유도, 라이딩의 여유도, 아키타를 둘러볼 여유도 마음속의 여유도 없는 것은 모두 돈 때문이다. 더는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여행 경비가 늘어나므로 다쳤지만 계속해서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다. 


  아키타 시내를 빠져나와 동해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7번 국도로 진입했다. 나가던 길은 어제까지 3일 연속 내렸던 비 때문인지,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가지와 젖은 나뭇잎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런 길에서 미끄러져 자빠진 어제의 악몽을 다시 되새기며, 속도도 내지 못한 채 천천히 조심스럽게 라이딩을 했다. 


  어제는 논 풍경의 길이었지만, 아키타부터 슬금슬금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차의 통행량도 그렇게 많지 않아 쌩쌩 달리기 좋았다. 하지만 바다 풍경은 기대와는 달리 크게 감동적이지 않았다. 제주도나 홋카이도에서 본 풍경을 상상했다면 큰 착각이었다. 한국 동해안에선 수많은 해수욕장들도 있었는데, 예쁜 해수욕장이나 상상 속의 바닷가 드라이브길은 아키타에서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일부러 지도를 보고 바닷가에 딱 붙어 있는 길 쪽으로 이동하기도 했고,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바다를 보러 해안가로 가기도 했다. 그러자 예쁜 해수욕장이 아닌 황량한 바닷가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아무렇게나 자란 풀들과 이따금 보이는 파도에 밀려온 너저분한 쓰레기들, 그리고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정오쯤이 되자 지도앱을 보며 점심 먹을 곳을 찾아 향했다. 유리혼조를 지나서 니카호라는 작은 마을을 지날 때였다. <사카나야상>이라는, 직역하자면 정말 한 마디로 ‘생선가게’라는 굉장히 직설적이고 심플한 이름의 가게였다. 이런 작은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마을에도 그 가게에는, 사람들이 가게 앞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대기하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석에 앉아 헬멧을 내려놓고, 장갑을 벗고 땀에 쩔은 버프를 벗어 숨을 돌렸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한 부부는 나를 꼭 신기하게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져지 위에 ROKA티를 입고 있었으니 한국인인 것을 알아보았을 것이고, 젊은 한국인이 이런 난데없는 시골의 가게에 자전거옷을 입고 왔으니 내가 보아도 별나게 보였을 것이다. 부부 중에서 아주머니가 내게 


“자전거 타고 어디서 오신 거예요?”


“아, 어제는 히로사키였고 오늘은 아키타에서 이제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 종주 중이여서요.”


“대단하네요! 그럼 어디에서 출발한 거예요?”


“홋카이도의 왓카나이에서 출발했습니다.”


여느 일본에서의 대화와 비슷하게 대화가 흘러갔다. 내 다리에 있는 상처에 붙인 대형 밴드를 보고서는,


“그 상처는 다친 거예요? 어쩌다가?”


“어제 비가 와서 빗길에 미끄러졌어요.”


“아이고, 저런…. 어제 우리 집에서 자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주머니가 너스레를 떨며 내게 말했다. 너스레였지만 정말 그랬었더라면,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여행 유튜브에서 유튜버들이 현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져 그 집에 신세를 지기까지 하는 영상을 많이 봤었는데, 나는 왜 그런 일이 없는 걸까? 


“한국은 가 보신 적 있으세요?”


“저희 딸이 작년에 이화여대? 그 대학교에 교환학생을 갔다 왔거든요. 그때 겨울에 한 번 갔어요.”


“아, 정말요?”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벌써 친절히 아주머니가 내어 주는 저녁밥을 먹으며 그 집 딸과도 인사하고, 나중에 결혼까지 하는 상상의 나래까지 펼쳐지고 있었다. 


“한국 겨울 진짜 춥지 않았어요? 일본은 따뜻한데.”


“맞아요. 맞아요. 12월인데도 정말 춥더라고요.”


그렇게 대화를 정말 20분 동안 계속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일본인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한국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일본에서 제일 맛있었던 음식은? 아들도 나와 같은 94년생이었다. 이번 여행을 와서 이렇게 일본인과 길게 대화한 적은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사람과 살갑고 긴 대화를 하니 웃음도 나고 활기도 나는 것 같았다. 이방인이었던 내게 관심을 가져 주고 말을 걸어주는 두 부부 분에게 정말 감사할 따름이었다. 


점원의 안내로 나보다 먼저 온 부부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가게 안의 유심히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가게의 주 메뉴는 오마카세 정식이었다. 그날 그날 들어온 생선을 직접 손질해서 회 정식으로 내어놓는다. 그래서 꼭 수산 시장에 온 것처럼 갖가지 생선들이 얼음이 가득 담긴 스티로폼 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안쪽 주방을 오고 가며 가게 주인은 직접 생선을 손질하여 회를 뜨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무려 이런 신선한 오마카세 회정식을 단 돈 1200엔에 먹을 수 있다는 것! 이런 음식을 먹을 때마다 또다시 삿포로에서 먹었던 5500엔의 우니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이 많은데 내가 그 돈을 그 작은 우니동에 태웠다니... 일품이었던 싱싱한 회맛을 따뜻한 밥과 함께 먹자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사카나야상에서 먹은 오마카세 회 정식



점심을 먹어치운 후, 부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자 "조심해~"라는 인사와 함께, 아쉬움을 뒤로하고 안장에 올라탔다. 그리고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다시 무의미한 라이딩을 이어나갔다. 채도를 잃은 듯한 풍경, 가끔 지나가는 일본의 시골 마을들, 황량한 바다 풍경의 연속이었다. 


일본에 온 지 2주일 정도가 넘어가자 이제 이 모든 풍경들도 아무렇지 않게만 느껴진다. 마치 아마 살고 있는 일본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열광하는 일본의 시골 감성, 그리고 나도 이제 현지인들처럼 그 풍경에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어느새 <다음에 또 오세요 아키타에>라는 흔한 인사말 표지판과 함께, 아키타현을 지나 야마가타현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었다. 야마가타현이라고 해서 크게 풍경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렇게 저녁 5시 정도가 되어 오늘의 목적지인 사카타에 도착했다. 바로 옆에 있는 도시인 쓰루오카에 갈까 싶기도 했지만, 쓰루오카로 가게 되면 내륙 안쪽에 있어 조금 더 라이딩 거리가 늘어났다. 일본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다니자라는 여유 따위는 생존 앞에서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피로에 절은 몸은 이제 어떻게 계획을 짜야 최대한 빨리 도쿄에 도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도쿄에 가서 4일 정도는 쉴 계획이었기에. 




어제 넷카페에서 잔 대신에 오늘은 7천 엔으로 큰 마음을 먹고 호텔을 잡았다. 팔다리가 만신창이가 된(손가락도) 이런 몸으로 호스텔이나 넷카페에서 연명하기는 힘들었다. 편안한 잠자리라도 가서 푹 쉬면서 체력과 상처를 빨리 회복해야 했다. 호텔에는 호텔 손님들이 함께 이용하는 온천도 있었다. 말이 온천이지만 사실상 매우 작은 목욕탕이었다. 하지만 상처가 뜨거운 물에 닿으니 너무 아파서 온천조차 이용할 수가 없었다. 


손을 30여 분 물에 담가 불려서 가시를 빼 보려고 했지만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가시가 빠진 부위와 가시를 구분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냥 포기했다. 그냥 타다가 만져서 아프면 그게 가시겠지. 그때 빼야지. 아, 내일은 어디까지 가야 하지? 다음 큰 도시인 니이가타를 목적지로 잡았다. 160Km나 되었지만, 하루 3천 엔 정도의 값싼 호텔도 있었고 이틀 뒤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이번에는 조금 큰 도시에서 하루를 쉬고 싶었다. 상처의 밴드를 새 밴드로 교체하고, 다시 약을 발랐지만 여전히 움직일 때마다 너무 아프다. 잠도 안 다친 쪽으로 몸을 돌려서 불편하게 청할 수밖에 없었다. 

만신창이가 된 다리와 가시투성이인 손가락







제 블로그에서도 더 많은 사진이 수록된 사진 여행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ywhfrv/22326489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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