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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Feb 26. 2024

일본에서 바라본 동해안

일본종주 12일차 : 사카타~니이가타

호텔 예약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는 줄도 몰랐다.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고 해야 할지, 그런 것도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예약을 하는 멍청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그냥 지금 이 순간 밖에서 아침 찾아 편의점을 다닐 필요 없이 조식을 먹을 수 있어 기분이 좋다는 것에 만족했다.


빨리 아침을 먹고 일찍 출발하기 위해서 새벽 6시가 되자마자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이른 시간부터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대부분 운동부인 듯 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전국 대회를 나가는 건가? 어떠한 연유로 이곳 사카타로 와서 단체로 숙박을 하는 듯했다. 무슨 종목을 하는지 궁금해서 뭔가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한국인이 일본 고등학생에게 말을 거는 모양새도 이상하고 부끄러워서 관두고 말았다.


여행을 다니며 호텔 조식 뷔페는 처음 먹어본 것 같은데, 꽤 괜찮았다. 특히 긴 장거리 라이딩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무제한으로 아침부터 칼로리를 보충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감자튀김, 빵, 파인애플… 배가 불러도 마지막까지 꾸역꾸역 빵과 달달한 음료까지 배에 욱여넣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짐들을 마저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하러 내려가기 전 거울을 바라보자, 군대 전역 후 왔던 홋카이도에서는 짧았던 머리가 어느새 꽤 많이 자라 있었다. 3주 전만 해도 내가 대한민국 끝자락의 강원도 고성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군대에서의 훈련과 비슷한 강행군을 사서 하고 있지만...



오늘도 어제와 같은 긴 동해바다의 해안선을 따라 라이딩을 이어갔다. 시커멓게 반쯤 탄 다리의 상처에는 어느새 진물이 더 이상 흐르지 않고 딱지가 앉기 시작했다. 쭉 해안선을 따라서 달리기만 하면 목적지인 니이가타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거리는 160Km. 오늘도 긴 장거리를 달려야만 했다.


내일 비 예보 탓에 날씨가 을씨년스러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가는 길 내내 정말 볼 것이 없었다. 명색이 동해안인데, 하루 종일 바다를 라이딩하면서도, 중간중간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정말 이 날 여행기엔 대체 뭘 적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사람들도 정말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꽤나 걱정이었다.


들렀던 곳은 고작 마트나 휴게소가 전부였다. 딱히 검색해서 들러야겠다 싶은 곳도 없었고, 이제 그 지역 특산물을 찾아가기보다 그냥 마트에서 사 먹는 것이 가장 돈 아끼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음식조차 이제 소개할 것도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이곳 동해안이 기암괴석과 암초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대표적으로 '사사가와나가레'라고 하는 곳이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사이클 코스로 잠시 등장한다. 어쩌면 강원도 동해의 촛대바위와 비슷한 곳이지 싶다.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고 책에서 말하고 있지만 내가 지나갈 때에는 사람 한 명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휑하고 쓸쓸했다. 흐린 날씨 때문인걸까? 


특히 가는 길 내내 터널이 정말 자주 나왔다. 차량은 적었지만 갓길도 너무 좁아서, 좁고 어두운 터널의 차선 끝을 내달리는 것은 꽤나 정신적 소모가 컸다. 아무리 차량이 나를 비켜가고 양보를 해주더라도, 결국은 터널이다 보니 어둡고 위험하기 때문에 뒤에서 차량이 오는지 오지 않는지 신경을 계속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 터널을 수십 개를 지나다 보니 어찌나 정신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가도 이러다 신경쇠약이 걸릴 것만 같았다. 


점심 이후에도 다시 오전과 같이 달리고 또 달리고 달렸다. 이 끝도 없는 길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수도 없이 민가와 바다 마을들을 제치고, 어느새 흐릿한 하늘도 짙은 남색으로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어느새 하나 둘 건물이 늘어나기 시작해서 니이가타에 도착했구나,라고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사실 알고 보니 이전의 하코다테에서처럼 니이가타에서 20~30km 떨어진 근처의 도시를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니이가타에는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 비로소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나가던 길에 도로변에 어마무시하게 큰 무인양품 매장이 보였다. 급속도로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무인양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시간을 내어 들어가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쿄 긴자의 6층 짜리 매장도 정말 크다고 느꼈는데, 여기는 꼭 대형 마트나 쇼핑몰처럼 엄청난 넓이를 자랑했다.


사실 일본의 여러 무인양품 매장을 가보면서, 결국 어딜 가든 똑같은 제품을 팔고 있어 제품에 대한 감흥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한국 매장보다 일본 매장에 훨씬 제품 수가 다양하고 한국에는 팔지 않는 것들이 많지만, 일본 내에서는 모든 무인양품이 대부분 똑같이 판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니이가타 이후에는 '아, 어딜 가든 똑같구나'라는 생각에 더 이상 일본 무인양품 매장에 발을 내딛지 않았던 것 같다. 



니이가타 역에 도착하여 자전거를 세워두고 인증샷을 한 방 찍은 후 숙소를 찾아갔다. <반다이 호텔>이라고 하는 숙소는 특이하게도 단독 건물이 아니라 상점가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 상점가 내부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로비는 고급 호텔처럼 정말 넓었지만, 방은 정말 침대가 대부분 방을 차지할 정도로 정말 좁았다. 1박에 3천 엔이니까 사실 뭐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라고 생각했다.


항상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면 천국이다.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싶지만 저녁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매번 그렇듯 몸을 일으켜 세워서 호텔 키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 저녁도 마트에 갔다. 마트에서 20~30% 할인하고 있는 방어회, 참치회를 골라 왔는데 호텔에 와서 보니... 젓가락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젓가락은 그렇다 쳐도, 포장을 뜯어보니 간장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통 간장은 안에 동봉하는 것 아닌가? 천사채까지 뒤져가며 찾아보았지만 간장은 찾을 수가 없었다.


젓가락을 찾으러 가기도, 간장을 찾으러 가기도 귀찮고 힘들어서 그냥 손가락으로 간장도 없이 생선 살을 집어 먹었다. 날 음식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는다니, 누가 보면 야만적이라고 느낄 만한 광경이었다. 니이가타는 쌀과 쌀로 만든 술이 유명하다고 해서 대충 검색해 니이가타 술을 사 왔는데, 간장과 젓가락이 있었더라면 좀 더 품격 있는 술안주가 되지 않았을까...



히로사키에서 니이가타로 오는 동안 3일 동안 한 번도 일기를 쓰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한 게 홋카이도에서는 80~90km 정도로 달렸지만, 이번 3일간의 라이딩동안 160km, 100km, 160km를 달렸다. 사실 홋카이도에서 160km를 찍고 나서 이제 100km가 짧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게 문제였다. 160km를 한번 탄 이후로는, 100km를 타면 꼭 열심히 타지 않은 것 같아서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 들었다. 이것밖에 못 타냐?라고 또 다른 내가 말하는 것만 같았다. 몸은 녹초가 되어 있는 데 말이다. 공부나 일에 대한 조언 중에서도 오늘 할 것을 마치면 여유가 있어도 더 하지 말고 딱 끝내라,라고 하는 말은 이런 뜻에서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오늘 또다시 큰 페이지의 한 장을 넘겼다는 기분이 들었다. 첫 장은 홋카이도, 두 번째 장은 니이가타까지의 동북부. 이제 다음 장만 넘기게 되면, 바로 도쿄가 눈앞에 있었다.






블로그에서도 더 많은 사진과 함께 일본종주 여행기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ywhfrv/223267713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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